하태경 의원이 한 일에 반대하는 이유

2013.12.01 20:47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집권당의 하태경 의원이 해군 2함대에서 촬영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문제 삼아, 국방부와 방송사는 물론이고 방송용 강연을 한 소설가 이외수씨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해당 방송 내용을 삭제하게 했다. 소크라테스 생각이 났다.

[정동칼럼]하태경 의원이 한 일에 반대하는 이유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비판적이었다. 참된 진리가 아닌 부유하는 여론에 휘둘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중 정치를 싫어하고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통치를 선호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테네 민주정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보병으로 전쟁에 세 번이나 참여했고, 아테네 민주정의 핵심 기관인 500인평의회 의원에 나서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500인평의회 의장이었던 기원전 406년에 큰 사건이 있었다. 스파르타에 대승을 거둔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아테네 함선 한 척이 침몰했는데, 함선 구조에 장군들이 책임을 다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었다. 비난에 나선 사람들은 민회에서 장군 6명의 처벌을 두고 투표할 것을 요구했다. 법정이 아닌 민회에서 처벌을 위한 투표를 제안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지만, 그들은 침몰 함선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영령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며 시민들을 선동해 반대자들을 굴복시켰다. 끝까지 저항한 사람은 법을 벗어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버틴 소크라테스뿐이었다. 여론 동원에 성공한 쪽의 바람대로 결국 투표가 이루어졌고 장군 6명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이듬해 아테네는 패전했고 민주정은 몰락했다.

하태경 의원이 천안함 희생자와 가족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것으로 타인을 제재하는 데 나서는 것 사이에는 신중해야 할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그 어떤 사회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피할 수 없다. 거기에 덧붙여 이번 사건은 선출직 공직자가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고 또 실제로 미쳤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선출직 공직자가 자율적 시민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위임받은 입법부 구성원이 시민의 의견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주었듯이, 최소한 법의 지배라는 범위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절차를 통해 제재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 영향력 행사를 절제하거나 입법을 통해 관여해야 한다. 하 의원은 그러한 규범을 경시했고, 그 결과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로 여론을 유해하게 분열시켰다. 이 정부 들어와 공동체의 통합을 위한 정치의 역할 대신, 안보와 이념 등 공안적 두려움을 동원해 사회를 끊임없이 분열로 이끄는 일이 많았는데, 하 의원의 행위 역시 같은 문제를 낳았다. 대의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입헌적 토대는, 시민이 일정 기간 자신의 주권을 위임하는 대신 자유로운 비판의 권리를 갖는다는 데 있다. 그런 민주적 기본권을 누구보다 더 존중해야 할 국회의원이 법과 절차에 따른 것이 아닌, 여론을 동원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그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하 의원은 그래도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판단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본인 혹은 본인을 지지하는 여론이 심판자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민주사회에서라면 정당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 시민의 의견을 심판할 권리를 누구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태경 의원이 갖고 있는 정치적 신념이 보수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도 진보도 우리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료 시민이며, 그들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선의의 경쟁을 해야 사회가 좋아진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렇기에 진보든 보수든 민주적 가치와 규범의 파괴자는 되지 않아야 한다. 아마도 민주보다 공안을 더 상위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 의원은 칭송될지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가 민주주의자라면 이번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바라건대, 민주적 규범을 지키면서 자신의 신념을 추구했으면 한다. 사회를 분열로 이끌 문제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집단편향성을 동원하는 데 열정을 쏟기보다 좀 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선출직 공직자로서 헌신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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