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마피아들이여, 고이즈미를 보라

2013.11.26 20:08 입력 2013.11.27 14:20 수정
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최근 일본에서 화제의 인물을 꼽는다면, 2001년부터 약 5년 반 총리를 지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들어야 한다. 2009년의 선거에서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러준 후, 정치계를 떠났던 그가 즉각적인 ‘원전 제로(폐쇄)’를 주장하면서 다시 일본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칼럼]원전 마피아들이여, 고이즈미를 보라

고이즈미는 현역 총리로서 유일하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을 정도로 보수우익의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원전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에너지정책을 펼쳤던 사람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제로를 소극적으로 말해 왔던 그가 핀란드의 사용후 핵연료의 최종처분장 등을 둘러본 올 여름부터, 일본 정부 및 자민당의 원전 재가동 방침에 대해 적극 반대의사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이즈미가 여전히 일본 국민의 의견 형성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은 원전의 재가동과 수출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등 대응에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고이즈미는 원전 제로를 주장하는 이유로 ‘최종처분장의 확보 곤란과 비경제성’을 들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 확보에 본격 대처한 지 10여년이나 흘렀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원전 재가동으로 계속해서 방사성폐기물을 배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추진파(핵마피아)들의 ‘원자력이 다른 발전원보다 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고이즈미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안전신화’를 전제로 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즉 후쿠시마 사고와 같이 폐로·오염제거·중간저장시설·배상 등의 사후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원자력의 단가가 다른 발전원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일본의 핵마피아들은 전력의 수급 핍박으로 인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다는 협박으로 신속한 ‘원전 재가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모 교수가 몇몇 경제지에 일본은 28%라는 높은 공급예비율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에도 대규모 정전을 피할 수 있었다는 ‘자의적인 해석’과 함께 안전이 보장되면 원자력 이용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 일본 전력회사들의 공급예비율은 8~12% 정도였으며, 최근에는 안정공급의 하한인 3% 이하로 내려가면 지역별 정전을 실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정전이 발생한 적이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이 전력 수급 핍박을 극복한 요인으로는 높은 공급예비율이 아니라 소비자의 절전, 화력의 증설, 자가발전의 이용 등을 들어야 한다. 특히, 역대 최고의 전력수요를 기록한 2010년에 비해 8~13%나 줄어든 소비자의 절전이야말로 수급 핍박을 극복하게 한 최대 요인이었다. 한편 일본의 핵마피아들은 정전이라는 협박이 실패하자 원전 재가동이 없다면 전기요금의 대폭적인 상승을 가져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을 인용한 국내 핵마피아들의 흑색선전, 즉 일본의 원전 50기 가동정지로 발전용 화석연료의 수입비용이 2배 증가해 ‘무역수지의 주요한 적자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의도적인 왜곡행위다.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는 1달러당 약 80엔의 엔고와 유럽의 경기불황에 따라 수출이 대폭 감소하고 스마트폰 및 화석연료 수입이 증가한 탓이다.

또 발전용 화석연료의 수입비용(2012년)이 후쿠시마 사고 전의 3조엔에서 6조1000억엔으로 2배 증가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요량’은 사고 전에 비해 약 37% 증가에 지나지 않았다. 즉 화석연료 수입비용 증가는 원전 대체보다는 천연가스 및 석유 등의 국제가격 상승과 1달러당 약 100엔의 급격한 엔저가 더 큰 요인이었던 것이다.

최근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원자력 비중을 둘러싸고 핵마피아의 학자들과 산업부의 퇴직 고위공무원들까지 나서 원자력의 경제성이 다른 발전원보다 우월하다는 궤변으로 원자력 확대를 외치고 있다. 고이즈미처럼 국내의 핵마피아들이 사회의 안정성 및 지속성을 추구하는 진정한 ‘보수’라면 과학적인 무해화 및 처분방법도 없는 방사성폐기물을 미래세대에게 그저 떠넘기는 현행의 원전정책을 전환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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