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조죄 법정드라마

2014.04.01 20:26 입력 2014.04.01 22:15 수정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증거조작은 서울에 있는 국정원 사무실에서 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을 위조하더니, 이것이 들통날까봐 국정원 내부 기획회의에서 공모하여 중국 허룽시 공안국의 발급사실확인서를 위조하여 마치 허룽시 공안국이 선양총영사관에 보낸 것처럼 꾸몄다고 한다. 이로써 중국 당국이 위조라고 밝힌 3개의 문건은 모두 유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국정원이 기획한 작품으로 드러났다.

[정동칼럼]날조죄 법정드라마

검찰은 일단 국정원 김모 과장과 협조자 김모씨를 기소하면서, 국정원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정도의 기획이 과연 김 과장, 권 과장 정도의 선에서 이루어졌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후에도 한참이나 수사를 미적거렸다. 국가보안법상 날조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국정원의 체면을 애써 세워주려는 검찰의 행보를 지켜보노라면, 검찰이 국정원 ‘윗선’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제대로 밝히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윗선’ 수사 못지않게 중요한 관찰 대목이 유우성씨 사건의 수사와 공판에 관여한 검사들의 역할이다. 윤갑근 수사팀장은 수사와 공판에 관여한 검사들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조사하는 흉내만 내고 있다. 검사들은 증거조작 사실을 몰랐으며 단지 ‘꼼꼼하지 못했던 실수’였다는 식의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수사 검사들은 이 날조죄 법정드라마의 주연들이다.

#장면 1 : 국정원은 유우성씨 수사 당시에 이미 출입경기록을 조작한 날조문서를 간첩조작의 증거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2012년 11월경 국정원 권모 과장이 입수한 유씨의 출입경기록은 발급날짜와 관인이 없었다. 검사는 이것을 증거로 사용하기를 포기한다. 대신에 국정원과 검사들은 유씨가 도강하여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사건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장면 2 : 출입경기록을 사용하려는 유혹은 여전했다. 국정원과 검사들은 작년 6월경에 중국 지린성 당국에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발급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던 터다.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자, 국정원은 기획을 수정한다. 출입경기록을 날조하여 다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작년 10월경 국정원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했다며 검사에게 건넸다. 국정원의 놀라운 능력이다.

검사는 작년 11월 선양총영사관에 출입경기록의 발급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때 국정원 김 과장과 권 과장은 선양의 이인철 영사와 짜고,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발급사실확인서를 날조하여 서울에서 선양총영사관으로 보내면서 마치 허룽시 공안국이 보낸 것처럼 조작한다. 팩스번호가 잘못 기재된 것을 알아차린 국정원 직원들은 다시 허룽시 공안국 팩스번호로 설정한 문서를 검찰에 보낸다. 팩스번호만 다른, 동일한 가짜문서가 검찰에 접수되었다. 항소심 재판에서 검사들은 국정원이 조직적 기획을 통해 날조한 이 문건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법정에 제출한다. 출입경기록의 출처가 불분명한데도, 그리고 내용은 동일하고 팩스번호만 다른 허룽시 공안국의 발급사실확인서 2개를 국정원으로부터 건네받고도 검사들은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았다.

역대 간첩조작사건들은 언제나 검사들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이루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불법구금-고문-허위자백”으로 만들어진 간첩조작사건에서 검사들은 국정원(과거 중정이나 안기부 시절)의 불법구금과 고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모른 체하였을 뿐이다. 그 시절, 간첩혐의자가 검사실에서 혐의를 부인하면 검사는 ‘다시 안기부에 보내 조사받도록 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가했고, 또 실제로 다시 안기부에 보내기도 하였다. 간첩사건 수사에 관한 한, 수사 및 공판검사들은 국정원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그렇다고 검사들이 허수아비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간첩조작사건의 당당한 주연급이다.

검찰은 이번주 중에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한다. 시나리오 기획자인 국정원의 ‘윗선’도 규명하지 못하고, 주연급인 검사들에 대한 수사도 소극적이라면, 날조죄 법정드라마의 진실은 결코 규명된 것이라 말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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