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하자, 선거제도 개혁과 함께

2014.10.16 21:05 입력 2014.10.16 21:27 수정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여야 국회의원 150여명이 구성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이들은 세월호법이 마무리되면 구체적인 개헌안을 마련하여 그것을 국회 발의를 거쳐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이 참여하고 있는 터라 발의요건은 이미 갖춰진 셈이고, 따라서 ‘개헌 블랙홀론’ 등을 앞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경계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사회적 호응만 일게 되면 개헌 논의는 바로 본격적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 예상된다.

[정동칼럼]개헌하자, 선거제도 개혁과 함께

개헌을 추진 중인 의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정점으로 하는 ‘87년 승자독식 체제’를 폐하고 협의와 합의의 정치를 보장하는 새로운 민주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임을 강조한다. 사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해서는 일반시민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크게 우려해왔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이 복잡다단한 경제사회를 제왕적 대통령제와 같은 단순한 정치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조정한다는 게 무리이긴 하다.

실제로 OECD 34개국 중 대통령중심제 국가는 오직 한국, 미국, 칠레, 멕시코 등 4개국뿐이다. 나머지 30개국 가운데 15개국은 의원내각제, 15개국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처럼 연방제와 상·하 양원제, 그리고 완벽한 삼권분립제 등의 견제 장치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독선과 독주가 자유로운,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승자독식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철저한 승자독식제인 현행 대통령제를 확 뜯어고쳐야 한다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십분 타당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권력구조를 개편하면 정말 승자독식체제가 무너지는 걸까? ‘철의 여왕’이라 불리며 아무도 제어하기 어려운 막강 권력을 휘두르던 마거릿 대처는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의 총리가 아니었던가. “선거에 의한 독재권력” 양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990년대 중반 정치체제를 개혁해낸 뉴질랜드도 의원내각제 국가였다. 기실, 승자독식체제를 지탱해주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는 양당제이다.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할지라도 양당제가 유지되는 한 수상이나 책임총리가 이끄는 행정부는 어차피 양당 중의 어느 한 당이 독점하게 된다. 총리 혹은 집권당에 의한 승자독식의 정치는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지역주의와 맞물려 작동하는 현행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를 그대로 놔두고 권력구조만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편할 경우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필요최소한의 의원 수만 확보하면 국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정부 구성 작업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므로 기존의 ‘영남당’과 ‘호남당’ 외에 추가로 ‘충청당’이나 ‘강원당’ 등 군소 지역정당들이 부상할 공산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 경우 지역할거주의 양상이 악화되며, 권력구조는 결국 지역정당(보스)들 간의 ‘과두체제’로 개악되는 꼴이 된다.

정녕 승자독식체제를 혁파하자는 거라면 권력구조 개편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 지역과 인물 중심의 거대 양당제를 온존케 하는 작금의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이념과 정책 중심의 온건 다당제를 견인해낼 비례성 높은 새 선거제도를 들여놔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가 진정한 합의제 민주주의의 권력구조로서 그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선거제도의 개혁은 그 제도 덕분에 현 지위를 누리고 있는 양대 정당과 소속의원들에겐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고통스런 작업이긴 하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개헌추진 의원들은 선거제도 개혁에도 앞장서야 한다. 현직 대통령 및 미래의 유력 대선주자들에겐 ‘통 큰 양보’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걸린 개혁 문제는 외면한다면 누가 그 진정성을 믿어주겠는가. 합의제 민주주의는 비례대표제, 다당제, 연정형 권력구조 등으로 이루어진 제도체제이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의제에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의 개혁이 동등한 비중으로 자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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