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는 안된다

2014.11.13 20:36 입력 2014.11.13 20:57 수정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15년 말까지 선거구 재획정이 불가피해졌다. ‘개혁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선 이참에 현행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를 득표-의석 간의 비례성을 보장하는 새 선거제도로 바꾸자는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선호와 이익을 제대로 대표하고 책임질 수 있는 새 정치체제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정동칼럼]중대선거구제는 안된다

옳은 주장임에 분명하나, 애석하게도 내년 겨울까지 선거제도 자체가 개혁될 가능성은 낮다. 선거제도의 개혁은 오직 국민이 강력히 요구해야 가능한 일이다. 기존 선거제도의 수혜자인 의원들이 스스로 그 제도를 개혁한 예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거의 모든 의원들과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많은 의원들은 소선거구제 폐지에 반대한다. 국민의 다수 역시 아직까진 소선거구제를 선호한다. 이 상황이 1년 안에 크게 바뀌지 않는 한, 헌재의 이번 결정이 미칠 정치적 영향력은 결국 선거구 재획정 정도에 그칠 것이다.

만에 하나 국회가 선거제도를 고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건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것이 양대 정당의 다수 의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안 제도일뿐더러 국민들 사이에도 비교적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지역구에서 통상 3~4인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지역할거주의 문제를 (대단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완화해줄 수 있다. 예컨대, 영남권의 일부 선거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진보정당의 후보가 3등이나 4등으로 당선될 확률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미미한 개혁 효과에 비해 중대선거구제의 폐해는 너무 큰 것일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에서는 한 정당이 한 지역구에 복수의 후보를 공천할 수 있으므로 후보들은 타당은 물론 자기 정당의 후보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같은 당 후보들끼리의 경쟁은 소위 ‘정당 프리미엄’이 작동하는 곳에서 특히 뜨겁다.

예컨대, 영남권 전체와 수도권 일부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들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할 것이다. 이는 순전히 인물 경쟁이므로 각 후보들은 정당이 아닌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개인후원회나 팬클럽 같은 사조직을 많이, 그리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회원들에게 끊임없이 물질적 혹은 정책적 혜택을 주려 들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가 보여주듯, 금권부패, 사익제공, 그리고 파벌정치가 만연해질 것임은 물론이다.

중대선거구제는 또한 거대 정당, 특히 집권당에 매우 유리한 제도이다. 집권당 의원들은 대체로 야당 의원들에 비해 개인후원회의 운영 등에 필요한 돈과 정책 제공 능력이 뛰어나다.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같은 중선거구에 속한 집권당 의원들일지라도, 예컨대, 한 사람은 농업, 다른 사람은 중소기업, 또 다른 사람은 건설 및 토목 관련 정책을 각기 따로 제공할 수 있다. 각자 서로 다른 성격의 지지그룹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경우 그 세 사람은 늘 당선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야당, 특히 군소정당들의 경우는 이러한 ‘표 분산 전략’에 쓸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부족하다. 역시 일본의 자민당 장기집권사가 보여주듯, 중대선거구제는 확실히 ‘집권당 프리미엄’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정치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진정한 선거제도 개혁을 원한다면 서둘러선 안 된다. 지금은 무엇보다 개혁 여론 조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헌재가 마련해준 이 귀한 시기를 공론 형성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상당한 권위가 부여된 ‘시민회의’를 구성하는 것이다(2012년 11월17일자 경향신문 시론 참조).

선거제도 개혁은 어차피 권력구조 개편과 맞물린 일이다. 그러니 이참에 시민회의를 소집하여 선거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헌을 하나의 의제로 묶어 1년 정도의 기간에 시민들이 직접 정치제도 개혁안을 만들어내도록 한다면, 그 과정에서 엄청난 개혁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물론 오래 걸리는 경로이다. 그러나 늦더라도 정치개혁은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하여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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