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과 무통의 ‘괴물’ 나라

2015.04.16 21:31 입력 2015.04.16 21:52 수정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세월호가 침몰해서 304명의 귀중한 생명들을 앗아간 지 1년, 우리는 그 비극적 사고보다 훨씬 더 차갑고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사고 직후 숱한 반성과 약속이 있었지만 정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고, 정부의 부실대응에 대한 진상파악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희생자의 숫자보다 더 많은 날들을 허비해버렸다. 진통 끝에 특별법과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시행령은 실행은커녕 오히려 진상조사를 막고 있는 걸림돌이다.

[정동칼럼]무책임과 무통의 ‘괴물’ 나라

1주기가 되는 날, 이 나라의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떠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놀랄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지난 1년간의 불통과 외면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일관성(?)이 있다. 유족 앞에서 없는 눈물을 한 번 더 보임으로써 모든 책임을 덮으려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나을 수도 있다.

국가개조를 선언하고 혁신을 다짐하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영혼 없는 제3자 화법마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얼빠진 국회가 1주기 당일에 개최하려던 음악회 제목처럼 대통령에게는 이날이 그저 나들이하기 좋은 ‘어느 멋진 봄날’인가 보다. 봄꽃이 화사하게 피는 지상 아래 차가운 바다에는 아직 사람이 있는데, 이미 책임은 없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다.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채 방황하는 유족들의 고난과 억울함만 커져간다. 약자의 절규는 정부에 대항하는 종북, 또는 자식 목숨으로 한몫 챙기려는 떼쓰기로 능욕해버린다. 하지만 한몫 떼어주어 입막음하려는 측은 다름 아닌 정부다.

진실 없는 미래의 청사진으로 현실의 고통을 가리려 하지 말고, 물질적 풍요를 내걸어 현혹하려 하지 마라. 스스로가 제거해야 할 적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착각 속에 점점 괴물이 되어갈 뿐이다. 그래서 성완종의 리스트는 사필귀정의 괴물목록이다. 온 나라가 조의를 표해도 모자라는 1주기까지 그 괴물들 소식으로 더럽혀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향해서도 탓할 일이 많다. 참사 직후 들불처럼 번지던 추모와 공감이 순식간에 피로감으로 변한 것은 아닌가? 일본의 현대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가 정의하는 무통문명은 겉으로는 안정을 확보한 채 잘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마치 중환자실에서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자는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문명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와, 세월호가 지겹다는 국민들에게서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본다. 유가족을 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지만 그들을 외면하는 삶은 이미 산 것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상실감과 공포감 때문에 뒤틀린 감정을 안고 살아도 자신만 이득을 보고, 남의 아픔을 못 본 체하는 왜곡된 방어기제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 몰라도, 필연적으로 자기 삶도 함께 누더기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면 깊이에는 양심이 부끄러워 꿈틀거리고 있다고 믿고 싶다. 세월호 사고에서의 정의는 모두가 유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평화와 화해는 충돌이나 갈등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여야 한다.

세월호 피로감이, 사고 이후 바로잡혔어야 할 것들이 바뀌지 않음으로 인한 안타까움의 반발 작용이거나, 아니면 정부의 여론조작 기제이자, 보수언론들의 선동적 저널리즘 프레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고해 같은 인생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망각의 힘이라지만, 세월호의 비극에는 통하지 않는다. 기억의 겉은 살짝 벗겨내고 색은 바래게 만들 수는 있을지라도 망각으로 덮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월호의 비극은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고, 이대로 가면 또 벌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야만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이웃이 경박한 피로감으로 공동체 의식을 묻어버리는 한 세월호는 결코 과거의 일로 치부될 수 없다.

세월호 문화예술인의 대책모임인 ‘연장전’의 시국선언문이 마음을 울린다.

“박근혜 정부가 열어버린 지옥에서 우리는 생명보다 죽음에, 진실보다 왜곡에, 슬픔보다 분노에, 애도보다 투쟁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연대를 만들어낼 진심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며, 또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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