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라 불리는 역사병

2015.10.18 21:01 입력 2015.10.18 21:07 수정
한상희 | 건국대 교수·헌법학

역사의 과잉 시대가 열렸다. 역사가 과거를 우상화하거나 혹은 과거를 부정해버리기 위한 도구로 불려 나와 우리의 삶을 옥죈다. 국정교과서라 불리는 이 ‘역사병’은 권력이 원하는 대로 세상살이의 다양한 사건들을 지워버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만으로 현재를 재단한다. 우리가 우리 삶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끔 하는 것이 역사라고 한다면, 국정교과서는 그 역사를 우리로부터 빼앗아가 버린다.

그러기에 이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본성에까지 파고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는 헌법명령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빼앗긴 사람은 그 국민이 되는 자격을 박탈당한다. 니체의 말처럼 “역사가 삶에 봉사하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으며, 우리 모두를 얄팍한 통치술의 대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정동칼럼] 국정교과서라 불리는 역사병

헌법재판소가 1992년의 결정에서 이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직결시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정교과서 제도는 “교과서 문제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획일화를 강제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 결정은 국정교과서 제도를 “중학교의 국어교과서에 관한 한” 헌법위반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당시는 노태우 정부가 3당 합당 이후 정원식 총리 계란 투척사건을 빌미로 학생운동을 억압하며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던 시기였음을 감안한다면, 이 결정은 실질적으로 국정교과서제에 대한 위헌결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국정교과서 제도의 위헌적인 요소로 지적한 것은 다섯 가지다. 첫째,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화·정형화하여 다양한 사고방식의 개발을 억제한다. 둘째,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관료적 타성 때문에 상황 변화에 능동적·탄력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된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위반되며, 넷째, 폭넓은 생활수준의 향상과 보다 양질의 교육문화를 누리고자 하는 국민적 요구를 반한다. 마지막으로 국정교과서 제도는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 내지 암기식 교육을 획책한다.

여기서 마지막의 지적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만든 것이기에 그 내용은 “무조건 정당한 것이라는 것이 전제”될 우려가 크고, “교과서에 수록된 것 이외에는 전부 배척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가치관의 경직화가 초래”될 수 있다고 보았다. 국정교과서 제도가 헌법의 적이 될 수도 있음은 이 지점에서이다.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요구하지만 이때의 다수자는 경직된 가치관에 사로잡힌 일방적인 다수자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 나타나는 “그때그때의 다수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는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유지될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제도, 특히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정반대로 하나의 가치관만이 절대적인 다수자가 되게끔 강요한다. 그래서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 된다.

역사에 균형을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물며 편향이라는 말은 역사에 관한 한 성립하기 어렵다. 정작 편향된 것은 국사학자 90%가 좌파로 전환했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이다. 혹은 현행 교과서의 실물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황교안 총리의 막무가내다. 여기에 정부가 그 근거로 사회통합을 말하는 것 또한 오류가 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인종통합판결(1954년)이 잘 보여주듯, 헌법이 추구하는 사회통합은 소수인종이나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하나의 국가체제 속으로 편입시켜 동등한 시민권을 누리게끔 할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통합은 국가가 원치 않은 사고와 가치관을 “편향”이라는 낙인을 찍어 탄압하는 것과는 대척점에 자리한다.

헌법재판소가 “국정제도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헌법이념을 고양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한다고 본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혹은 만보를 양보하여 국정제도라도 “반드시 하나의 교과서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 진시황과 히틀러가 그러했고, 지금의 북한이 그러하듯, 국정교과서 제도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부정해버리는 극단적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역사의 과잉 속에 묻혀버린 우리 헌법의 결여를 제대로 메꾸어내야 할 때가 된다. 역사가 우리의 삶에 봉사할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역사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