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국정화, 정부의 정책적 ‘자해’

2015.10.20 20:39 입력 2015.10.20 20:54 수정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매우 뜨겁고 더 보탤 이야기가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해당 정책이 정부·여당의 목적과 지향을 위해서라도 실패가 예정된 정책임을 보이고 내달 초 확정 전 교육부가 이를 포기하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적는다.

[정동칼럼] 교과서 국정화, 정부의 정책적 ‘자해’

첫째, 국정화 정책의 추진 목적이 매우 불분명하며, 현존 정책이 어떤 문제점을 야기하는지가 매우 불명확하다. 굳이 요약하자면 현재의 검정교과서들이 ‘좌편향’이어서 젊은이들을 ‘종북화’시키고 부패시킨다는 주장인데, 이는 전혀 경험적 사실과 다르다. 정부가 주장하는 ‘좌편향’ 교과서로 역사교육을 받은 우리의 청년들이, 대북 안보의식에서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20대라는 사실은 최근의 모든 경험적 연구가 내놓은 일치된 결과이다. 굳이 말하자면 개인의 이념 성향은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해전) 결정되며, 이들이 가지게 된 현실에 대한 비관적 인식 또한 비관적 역사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관적 현실에 연유한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20대를 보냈던 386세대가 오히려 국정교과서로 공부했던 세대라는 사실 또한 지적하고 싶다. 정부가 이를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국정교과서를 추진한다면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둘째,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그 정책의 직접적인 대상인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기 짝이 없다. 마치 우리의 중·고생들이 순결한 백지와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특정한 ‘색깔’로 물들이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국가의 ‘올바른’ 색깔로 물들이겠다는 주장이다. 다행히도 우리 중·고생들은 교과서 하나로 쉽사리 물들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재미있고 필요하다는 생각만 든다면 이들은 밤새워 8종 교과서를 모두 찾아 읽고, 손가락은 언제라도 인터넷 검색 화면을 향할 것이며, 역사 ‘덕후’가 탄생할 것이다. 물론 지적 자극이 멎고 싫증이 도래하는 순간 이들이 역사책을 덮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느 경우이건 교과서를 통해 이들을 국가 이념으로 ‘물들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외신기자들 앞에서 국정화 작업을 “(성인보다) 지적 수준이 조금은 덜 성숙된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모욕적으로 설파한 국사편찬위원회가 과연 국정교과서로 세련된 지적 자극을 줄 수 있을지는 절망적이다.

셋째, 교육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사실은 교과서가 아니라 일선 교사들이 결국 교육의 내용과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교과서가 어떤 성향을 띠건 그 내용을 소화하고 가르칠 사람은 선생님들로 수십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모든 교과서들의 성향과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정작 학생들의 마음속에 평생 남는 것은 교과서의 활자화된 텍스트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생생하게 들려주는 무용담과 구술사가 아니었던가. 우리의 역사 교육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고 우리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일선 교사들과 협의하고 설득하고 찾아나갈 중요한 시간을 교육부가 국정화를 통한 이념전쟁에 허비하는 것이 진심으로 우려된다.

넷째, 교육부가 오해하고 있는 결정적인 부분은 좋은 교과서가 언제든지 ‘쉽게’ 쓰여질 수 있으며 ‘전문적인’ 연구와는 구별된다는 인식이다. 그렇지 않다. 어려운 내용을 어려운 언어로 서술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어려운 내용을 쉬운 말로 적어나가는 것은 학문적 깊이와 보편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좋은 교과서들을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최신 성과들을 반영하는 개정과 증보를 거듭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학술적 저력과 교육적 경험과 신선한 내용과 독자에 대한 배려가 소리 없이 향기처럼 배어 나올 때 타인들은 이를 ‘좋은’ 교과서라고 언젠가는 부를 것이다. 쓰여지기도 전에 스스로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부르는 교과서, 학계의 90%가 좌파라는 거침없는 주장에 기반을 둔 교과서에 훌륭한 연구자가 참여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요컨대,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며 교육부의 정책적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책 당사자들(정부, 학생, 교사, 학부모, 연구자)을 정책 성패를 결정할 ‘정책네트워크’라 부를 수 있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정책네트워크는 존재하지 않거나 그 뿌리에서부터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목적이 없고, 연구자들은 쓰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은 읽지 않을 것이며, 교사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학부모들은 여전히 소외될 것이다.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어떻게 사유의 여백과 풍성한 토론의 기회를 줄 것인지, 승리의 기록과 공동체의 아픔을 어떻게 이들에게 들려줘야 할지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시간이 오늘도 지나가고 있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눈을 마주 보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