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왜 위험한가

2015.10.15 20:51 입력 2015.10.15 21:18 수정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교육부는 지난 10월12일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단일 교과서로 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하고, 그 교과서의 이름을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명명하기로 하였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의 해석과 기술에 정부가 개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공론화를 거친 역사학계의 합리적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된 것이 아니라, 현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매우 정치적인 결정이며, 그 발상에 있어서도 잠재적으로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포함하고 있다.

[정동칼럼]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왜 위험한가

첫째,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발상은 “무오류성”을 지향하고 있다. 역사라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것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것이고, 불완전한 인간이 한 일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수많은 오점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이미 벌어진 과거의 역사를 물리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욕망의 존재인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과거의 역사를 바꾸고 오점을 가리고, 아쉬움을 지우려는 시도를 한다. 과거를 바꾸어야 더욱 완벽한 현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것 같은 역사에 숨을 불어넣어 생물을 만들고 새로운 역사로 재창조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역사에 대한 물리적 조작이 아니라 정신적 조작이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와 재해석이라는 과정이다. 의미부여에 따라 과거의 스토리가 이미 알던 스토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스토리로 재탄생한다.

한때 광폭했던 왕이 후대에 와서 자주적 외교의 천재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동북아시아의 주변에 머물던 민족이 중원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발상은 바로 이런 과거를 바꾸는 작업이고, 그 핵심은 특정 정치세력의 과거에 대한 무오류를 증명하는 것이다. 아무리 공적이 많은 정치적 행위라 하더라도 공뿐만 아니라 과가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거기서 과로 지적되어 온 것을 “자학”이라고 표현하면서 지워버리는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특정 정치세력이 했던 일은 오류가 없는 “올바른” 일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발상이다. 스스로를 무오류의 신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둘째, 이러한 무오류성은 자연스럽게 “배타성”으로 연결된다. 특정 정치세력이 무오류라면 반대세력은 “올바르지 못한” 오류로 점철된 세력이고 따라서 척결의 대상이다. 존재의 자격이 없는 세력이 되어버린다. 무오류의 정치세력과 오류의 정치세력은 무오류 정치세력의 자비에 의해서만 공존할 수 있으며, 그 오류의 정치세력이 “종북”으로 무리하게 규정될 때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발을 붙이고 살 수 없게 된다. 북한으로 가거나 철창으로 가야 한다.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을 자신을 지지하는 무오류의 국민과 반대하는 오류의 국민으로 나누어 오류의 국민으로 낙인을 찍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생존적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셋째, 배타성의 최종 종착지는 “통제”다. 역사는 아무리 재해석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필자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대단히 일방적인 역사교육을 받았지만, 이러한 역사교육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일거에 무너졌다. 다양성과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대학에서는 다양한 시각의 역사교육을 받게 되고, 여러 종류의 스토리가 던져지기 때문에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면 어떤 스토리가 가장 설득력이 있고, 건강한 스토리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무오류성과 배타성의 스토리가 영속되려면 당연히 그 스토리를 위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할 것이고, 인간의 뇌를 다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없으니 신체적인 물리적 통제를 시도할 것이다. 그래서 무오류성과 배타성과 통제의 위험성을 가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매우 전체주의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는 이 시대에서 현 정부가 이런 전체주의적 의도와 전체주의 국가 비전을 가지고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도 역사 못지않게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국민은 피를 흘려가며 민주화라는 너무나 소중한 역사를 만들었고 그 혜택으로 전체주의적 발상을 선거를 통하여 뒤집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정치세력이건 과거에 대한 무오류성이라는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선거의 심판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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