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윤리와 인성

2016.02.14 20:24 입력 2016.02.14 20:28 수정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계의 일원으로서 낯부끄러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해 말 다나의원의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간염 집단 감염, 마취제 재사용으로 인한 환자 사망, 의학전문대학원생의 여자친구 감금폭행 사건과 봐주기 처벌 논란, 그리고 올해 들어 언론에 보도된 의사들의 성추행, 대학교수의 여자 전공의 성추행 사건 등 굵직한 것만 꼽아도 양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다나의원의 판박이 사건이 제천과 원주에서 발생했다.

최근 들어 이런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사건 자체가 증가했을 수도 있지만,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덮였을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보도된 일부 사건은 몇 년 전에 발생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는 듯하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동칼럼] 의사의 윤리와 인성

우선은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의료계도 비윤리적인 동료 의사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료계의 전반적인 여론은 해당 의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의료계가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국민의 눈에는 의료계가 비윤리적인 동료 의사를 감싸는 것처럼 비친다. 비윤리적인 의사에 대해서는 의료계가 정부 당국보다 더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의료계가 보여주어야, 특정 개인의 일탈이 전체 의료계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의료계의 자정 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에 합당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정확한 실상을 알 수는 없지만, 세상에 알려진 사건은 전체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의료는 일반인이 잘 알 수 없는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다. 사람의 몸을 다루는 특성 때문에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도 모호하다. 공무원이 조사를 해도, 의료행위의 윤리성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의사는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다나의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의료계의 내부 고발 덕이었다.

동료 감시는 전문 분야의 윤리를 지키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전문가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전문가 입장에서 부담이 되는 일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경찰 효과가 상당하다. 의료 선진국들은 의료인단체에 비윤리적인 의사를 조사하고 징계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의료인단체가 아무런 권한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혹자는 의료인단체에 그런 권한을 주면, 동료 의사의 잘못에 대해 봐주기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 우려는 기우이다. 동료 의사의 잘못을 봐주는 식으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정부가 의료인단체로부터 그 권한을 회수하면 된다. 설사 봐주기 사례가 일부 발생하더라도, 동료 감시에 의해 새롭게 드러나는 사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의대생 선발과 교육 과정의 개선도 필요하다.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개인의 인성 문제와 의사로서의 윤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윤리는 성인기 이후의 교육을 통해서도 함양될 수 있지만, 인성은 그렇지 않다. 사람 됨됨이를 뜻하는 인성의 기본은 사춘기까지 거의 다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의사가 되기에 적합한 인성을 갖춘 학생을 잘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타인의 몸을 다루는 일을 맡아서는 안될 학생이 의대생으로 선발되는 것을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 극심한 입시경쟁은 인성을 포기하고 성적에만 매달린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교육당국이 추진하려다 백지화한, 인성평가의 대학입시 반영도 해법이 아니다. 인성마저 암기식 사교육의 대상으로 만들 뿐이다. 학생의 인성을 다층적으로 검증해 부적합자를 선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일부 의과대학이 시행하는 ‘다면 인성·적성면접’이 그 예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대학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력과 노력이 투입되는 점이 문제다.

의과대학 윤리교육의 현장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이미 각 의과대학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의료윤리 강의에 할애하고 있다. 기존의 의료윤리 교육은 연구윤리, 안락사, 임종환자 등 본질적인 윤리 쟁점들에 치중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불거진 여러 사건은 상식 차원의 윤리와 관련된 것들이다. 의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윤리와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윤리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일상적인 현실과 괴리된 윤리는 박제된 교리 신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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