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정책의 길

2019.01.01 20:37 입력 2019.01.01 20:39 수정

산업정책은 정부가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하는 정책이다. 농업 비중을 줄이고 제조업 비중을 늘리는 것과 같은 거시적 정책이 될 수도 있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특정 업종이나 특정 기업을 키우는 미시적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정동칼럼]한국 산업정책의 길

산업정책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시장이 자원을 여러 산업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실패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장 실패가 없는데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산업정책의 유용성에 대한 경제학적 논쟁이 후진국의 경우에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후진국에서는 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는 제도가 미비하고 회계 관행과 정보의 흐름이 불투명하여 노동과 금융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후진국에서조차 산업정책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무능이나 부패로 인해 정부가 잘못된 산업과 기업을 선택하고, 그래서 실패한 산업을 재정을 퍼부어 연명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발달을 제약하는 수송, 에너지, 교육, 연구 등의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넘어서서 특정 산업이나 특정 기업을 육성하는 적극적 산업정책에는 비판적이다.

경제학에서 선진국의 산업정책이 논의되는 일은 드물다. 시장이 발달한 경제에서 정부가 기업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찍어서 육성하는 정책은 다른 선진국의 반발과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재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선진국의 산업정책은 교육과 연구에 대한 보조금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지구온난화라는 시장실패를 발견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친환경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또 다른 계기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성공이다. 대규모 경제에서 정부가 특정 산업과 기업을 찍어서 육성하는 개발정책이 성공할 수 있음을 중국이 보여줬고, 이제는 같은 방법으로 선진국으로 재도약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가 선진국을 위협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반발이 WTO체제를 흔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 산업정책에 대한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첨단산업에 정부의 연구보조금과 국책금융기관의 신용을 집중하는 정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중국제조 2025’처럼 정부가 발전시켜야 할 산업의 리스트를 정하고 이들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와 국책연구원에서 들려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현 정부에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도 중국의 위협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기간산업인 조선, 철강, 화학, 자동차, 전자 등에서 최대 고객이었던 중국이 이제 한국의 최대 경쟁자가 되었고, 첨단 디지털 산업에서 한국을 이미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도약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한국이 통째로 멸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그 위기감이야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과연 한국판 ‘제조 2025’가 적절한 대응책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는 세계 초유의 강력한 산업정책이었던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 강국을 이루었다. 정부가 선택된 소수의 기업을 위해 경쟁 수입품에 고관세를 부과하고, 국유화된 은행을 통하여 저금리 자금을 공급하고, 각종 특혜를 제공했던 시스템이다. 사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란 것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아류에 불과하다. 과연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 경제가 중화학공업 육성 2.0으로 혁신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2020년대의 한국 경제가 혁신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과거 선진국이 그러했듯이 시장이 찾도록 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선진국의 산업정책은 결국 쇠퇴하게 될 전통 제조업에 묶여있던 노동과 자본이 원활하게 새 산업에 재배치되도록 하는 노동과 금융시장의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과 적극적 노동정책을 강화함과 동시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파산제도의 중심을 행정부에서 법원으로 이동시키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정부가 아니라 벤처캐피털과 펀드가 찾게 하는 것이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전통적 산업 분류에 따라 생성되었던 규제를 융합적 신산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재편하고 새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기술과 이익집단의 충돌에서 타협점을 찾아내는 담론 형성에 정부와 의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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