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기

2019.06.11 20:34 입력 2019.06.11 20:44 수정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시민으로서 자기 견해를 가지고 당당하게 발언하는 여성·청년들은 ‘너는 너무 정치적’이라는 타박을 듣기도 한다. 때로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보통의 생활인뿐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민망하고 부담스러우며, 천박한(?) 것으로까지 간주된다. 요즘처럼 현실정치가 천박한 막말과 서민의 삶과 무관한 정쟁으로 점철되면 다시 탈정치·반정치의 힘은 커진다.

[정동칼럼]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기

그런데 이 같은 정치에 대한 의도된(또는 강요된) 무관심은 한편 역사적으로 구성된 정치문화의 일부이다. 멀리 가면 태생부터 외세의 침탈과 극단적 이념대립 때문에 수많은 지사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현대 한국 정치가 배경이다. 예컨대 황순원 같은 대작가가 <소나기>(1953) 같은 초등학생들의 ‘순수한’ 우정(?) 이야기 같은 것을 쓰거나 평생 칼럼 같은 ‘잡문’을 멀리한 것도, 그가 겪은 참담한 이념 대립과 강요된 사상전향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군부독재 시절 부모들은 자녀들이 운동과 정치에 가까이 갈까 늘 전전긍긍했다. 박정희·전두환에게 저항한 사람들이 어떤 희생을 당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라 상징되는 퇴행의 시대에는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강하게 새로 구조화되었다. 그래서 학생은 학생운동으로부터, 교수는 학술운동으로부터, 시민들은 노동운동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누가 조장하고 누구에게 유리한 것이었을까?

과도한 정치열과 정치혐오(냉소)가 동전의 양면으로 상존하는 한국에서 ‘건전하고 성숙한’ 정치적 시민으로 살고 처세하기란 쉽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정치라는 ‘바보’에게 ‘웃으면서 화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2016~2017년 ‘웃으면서 화내기’의 높은 경지를 실행해보았다. 촛불항쟁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온통 망쳐놓은 정치에 대한 고도의 ‘웃으면서 화내기’였다. “이게 나라냐?” 시민들은 실로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매주 장수풍뎅이연구회, 민주묘총, 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고산병연구회 같은 깃발들을 들고나와서 창의력을 뽐내고 아이와 가족들 또 친구들과 함께 ‘직접행동’을 수행했다. 그것은 혹자들의 안타까운 바람처럼 혁명에는 못 미쳤지만, 분명 대단한 민주주의의 성취였고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높은 ‘반폭력’ 시민성의 증거였다. 시민들이 너무 빨리(?) 정치를 정치인들과 새로 선출된 정부에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것은 차라리 아쉬웠다.

그런 고도의 정치능력은 오랜 시간의 단련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원점에는 1980년의 광주항쟁과 1987년의 6월항쟁이 있다. 32년 전의 오늘, ‘웃으며 화내기’는 불가능했다. 쏟아지는 최루가스와 백골단 폭력 앞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전국의 민정당 사무실과 파출소를 공격했다. 항쟁을 겪었던 부산이나 광주에서만이 아니라, 대구나 대전처럼 얌전한(?) 동네에서도 그랬다. 시민들은 물론 이 ‘반폭력’을 찬성하고 격려해주었다.

‘87년체제’는 지루하고 낡았지만, 시민들은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다하며 직접행동과 대의제 양쪽을 다 사용하여 일상과 헌정을 지켜내는 정치적 능력과 경험을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 ‘선진’ 정치문화가 아직은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 극우 정치종교에 기댄 시대착오와 냉전 공안 세력이 실재한다.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천박한 인식과 사세에 맞지 않는 ‘좌파’ ‘독재’ 따위의 어설픈 수사, 군복과 태극기를 두른 패션이나 군가와 새마을노래 등이 난무하는 태극기집회는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그 수준은 한국 민주주의 문화의 일부이다.

태극기집회를 눈여겨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그 옆을 지나가는 보통의 시민들과 젊은이들이 거기에 어떤 눈길을 보내는지? 황당함, 불편함, 경멸, 연민 등일 것이다. 그럼에도 90%의 시민들은 그들에게 항의하거나 시비 걸지 않는다. 황당한 내용의 집회를 열고 쿠데타를 선동하거나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활개 칠 ‘자유’조차 봐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두운 한국 정치사와 타락한 기득권을 반영하는 안쓰러운 행위임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보수’가 조장하는 수준 낮은 정치문화에 대한 시민들과 생활인들의 인내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 시민들이 전두환의 포악과 박근혜의 암둔함을 내친 항쟁의 단호한 주체였다는 점을 6월항쟁 기념일에 새겨본다. 특히 여성·청년들에게 ‘너는 너무 정치적’이라 타박하지 마시라.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야말로 ‘꼰대’이거나 새로운 시민정치의 싹을 배제하려는 술수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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