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사고의 빈곤

2019.06.16 20:41 입력 2019.06.16 20:43 수정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어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제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북핵 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것으로 비치는 우리 정부의 행동도 적절치 않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은 그간의 북핵 해결 노력이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잘못된 결과는 잘못된 과정의 축적이다. 미국은 전략적인 문제를 작전적으로 접근했고, 우리 정부는 전략적인 문제를 정략적으로 왜곡했다.

[정동칼럼]전략적 사고의 빈곤

북핵 문제 해결을 전쟁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얼마간의 시사점은 있다. 전쟁에는 다양한 수준의 사고와 행동들이 중층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전략의 영역, 작전의 영역, 전술과 전투의 영역이다. 아무리 전술과 전투를 잘하더라도 작전적 오판을 극복할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작전적 성과도 전략적 실수를 만회하기 어렵다. 전략은 장군들의 고유영역이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민군관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전략은 점차 민간 정치지도자들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과거 장군들은 거의가 정치지도자였고 전략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클레망소 프랑스 대통령이 “전쟁이란 너무 중요해서 장군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했을 때의 그 전쟁이란 바로 전략의 영역을 의미한다. 과거 장군들의 영역이었던 전략과 작전의 영역 사이에는 심연과 같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전투를 잘한다고 훌륭한 작전가가 될 수 없다. 훌륭한 작전가가 뛰어난 전략가가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까지의 북핵 해결 노력은 통찰력과 인내가 필요한 전략적 접근이 아니라, 정확성과 신속성을 요구하는 작전적 접근방식에 가까웠다.

전략적 사고의 핵심은 방법과 수단이 아니라 문제 해결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굳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이길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략적 사고의 원칙이다. 요구되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목적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지금 미국은 제재를 북핵 해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병법서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손자병법>과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가 가치 있는 것은 기묘한 작전과 전술이 아니라 전략적 수준의 통찰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 과정을 보면, 우리는 상대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살펴보라는 <손자병법>의 기초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북한은 한·미동맹보다 중국의 위협을 더 심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북한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를 상당한 수준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이 처한 입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전략적 사고능력의 결여를 의미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상황도 상정해야 한다. 북핵 폐기를 위한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안보우려와 경제발전이라는 요구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고 무작정 핵만 포기하라는 주장은, 북핵 해결 노력에 관심이 없거나 전략적 사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미국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북핵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미가 강력한 동맹이지만 입장과 이해를 달리하는 부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미 간 전략적 이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강력한 단결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논란의 대상이 됨으로써, 우리의 안보이익을 식별하고 추구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 입장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 매우 제한된 스펙트럼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북한을 배제하고 강압하는 것보다 포용하고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내용이다. 한편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세계 10대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통일전선전술로 인해 공산화될지도 모른다는 패배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북핵 문제의 성과를 현정부 지지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정파적 유혹의 반대급부인지도 모른다. 정상적이라면 걱정은 북한이 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우리는 전략적 우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미국은 북한을 친미국가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몇번이나 놓쳤다. 우리 정부는 정략적으로 북핵 문제에 접근하여 오히려 스스로 입지를 약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전략적이란 말은 통찰력과 인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본격적인 북·미 협상 전에 당국자들이 <손자병법>과 <군사학 논고>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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