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하다

2010.08.01 21:20
박주현|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변호사

사람 사는 세상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실존주의자인 카뮈가 그것을 ‘부조리하다’고 표현했던, 참을 수 없는 불일치가 인간사에서는 다반사로 등장한다. 그 역설은 인간사를 더 괴롭게도 하고 더 재미있게 해주기도 한다. 하긴 이런 역설이 없다면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언론에서도 이런 모순과 불일치가 종종 목격된다. 두 사람의 정치인이 뇌물사건에 연루되었는데, 한 사람은 실제로 받았고 한 사람은 실제로 받지 않았다고 치자. 과연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타격을 받게 될까. 뇌물을 받은 사람은 뇌물을 받아서 어떻게 처리되었다는 단신기사만 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뇌물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가 몇날 며칠 혹은 한달 두달씩 뇌물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하면서 언론에 오르내리다가, 결국 재판에서 무죄를 받게 된다 해도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는 뇌물비리범으로 각인되게 된다.

두 사람의 정치인이 친서민 정책을 펴는데, 한 사람은 말을 앞세우며 행동은 하지 않고, 한 사람은 군말없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치자. 과연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친서민으로 기억될까. 행동 없이 하는 말은 단순하고 시끄러워 언론에서 따옴표로 옮겨지지만, 말 없이 하는 행동은 복잡하고 조용해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거나 찬반 공방으로 다뤄진다. 결국 서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서민을 위한다고 말만 한 사람이 사람들의 기억에 더 친서민으로 남게 된다.

물론 인간은 지각 있는 고등동물이어서 이런 불일치를 결국 알아채게 된다. 그런 경험 속에 어떤 이는 불일치하다는 점에 주목해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결국 진실이 드러났다는 점에 주목해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정부와 여당이 친서민을 이야기하고 대기업집단과 각을 세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2년 반 동안 72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부자감세와 ‘강부자’ 인사, 각종 부동산 규제 철폐, 지방교부금과 복지예산 삭감으로 대기업과 부자편향을 몸소 보여준 이명박정부와 여당이 이제 정책 유턴을 하는 것인가? 대체로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경향신문 7월27일자는 3면 제목을 아예 ‘MB의 대기업 때리기’라고 정해서, 친서민 행보 및 대기업과의 각세우기에 대해 ‘근본대책 없는 포퓰리즘’이라 우려하고, ‘친서민 정책 하려면 친기업 기조부터 바꾸라’고 주문하면서 그 진정성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연하다. 그동안 친서민이라는 말은 무성했지만, 그 실체는 없었다. 친서민 정책의 대표주자인 미소금융과 보금자리주택,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는 이름만 번드르르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소금융은 6개월간 단 100억원 남짓 대출하는 데 그쳤고, 보금자리주택은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줄이는 대신 중산층을 위한 저가주택을 늘리는 것이었으며,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는 높은 이자로 인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여당과 정부는 친서민 정책에서 드러난 문제와 한계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햇살론’이라는 또다른 금융상품을 출시했다. 되풀이되는 ‘이름장사’에 짜증이 난다. 이명박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대해 야당보다 낫다며 칭찬했던 경향신문으로서는 이제 그 칭찬의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할 때가 되었다.

빈 수레는 요란하다. 과연 언론은 그 요란한 소리를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수레에 담긴 물건을 기록할 것인가. 대부분의 언론은 그 요란한 소리를 더 많이 기록할 것이다. 물건이 없으니 더더욱 소리라도 기록할 것이다. 독자들은 계속해서 그 요란한 소리들을 따옴표로 옮겨 들어야만 할까. 나라면 내년 예산안이 나오기까지는 따옴표로 옮기는 말들을 일절 읽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말한다. 곳간 열쇠를 열어 곡식을 내주지 않으면서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지금 각 부처에서 제출한 내년 예산안이 모두 대통령 책상 위에 올라가 있다. 10월2일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조율을 계속할 것이다. 앞으로 두 달, 부자감세 72조원과 4대강 예산 30조원이 복지와 교육, 지방교부금과 일자리예산으로 얼마나 바뀌는지 지켜볼 것이다. 대기업으로 모두 흘러들어가는 연구·개발 예산 15조원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예산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볼 것이다. 친서민, 친중소기업 논란은 두 달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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