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불법 전화홍보 사건 ‘원칙’에 충실한 보도 돋보여

2011.05.01 20:05
백병규 | 미디어평론가

4·27 재·보선이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다. 예상을 넘어선 높은 투표율과 한나라당 텃밭이라던 분당을과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의 정치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야권 단일후보를 이뤄냈지만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한 김해을 선거 결과 역시 같은 맥락에서 국민참여당과 그 후보가 후보 단일화와 유세 과정 등에서 보인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탓이 커 보인다.

한나라당의 참패 원인 분석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엄기영 강원도지사 한나라당 후보 측의 불법 전화홍보 사건일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결정적인 악재였지만, 적반하장식의 한나라당 대응이 더 큰 반발을 불러온 듯싶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가 현장을 급습해 명백한 ‘물증’들이 포착됐지만, 엄 후보와 한나라당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는 식으로 딱 잡아뗐다. 최문순 민주당 후보의 과거 ‘천안함 발언’에 분노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한 일이라고 둘러치기까지 했다. ‘검은 것’도 ‘희다’고 우기면 통할 것이라는, 뭔가 ‘믿는 구석’ 없이는 보일 수 없는 ‘뻔뻔한 작태’였다. 아무리 민심과 동떨어져 있는 정부·여당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경향신문 4월25일자 이용욱 기자의 ‘기자메모’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몇몇 신문·방송 등은 선관위가 고발조치까지 한 불법선거 양태를 축소 보도하거나, 아예 다른 사례와 묶어 ‘선거 막판 불법·과열선거 극성’ 식의 양비론식 보도로 돌려버리고 있다.” 정확한 지적이다. KBS와 MBC를 비롯해 거의 모든 방송이, 한국의 보수진영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신문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보도했다.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증언 등을 통해 사태의 실상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것은 돋보였다. 직접 전화홍보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일당’을 받고 동원됐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상세하게 전한 보도(4월25일자 2면 ‘엄기영 강원지사 후보 전화홍보원 A씨 증언’)가 대표적이다.

26일자 신문에서는 엄 후보가 회장을 맡았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지원 민간단체협의회(민단협)에서 엄 후보를 도와 서명운동에 앞장섰던 최모씨가 적발된 불법 전화홍보를 사실상 주도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또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부터 ‘민단협’이 ‘선거용 조직’으로 활용됐다는 의혹도 설득력 있게 제기했다.

경향신문이 26일 같은 지면에 전화홍보원들에게 ‘거액’의 과태료나 벌금 부과가 불가피할 것 같다는 기사를 실은 것도 눈에 띈다. 이 기사는 불법 선거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꽤 큰 ‘범죄행위’라는 경각심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계도적이다. 나아가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별 생각 없이 불법 선거운동에 연루된 전화홍보원들이 서민들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거액의 과태료나 벌금을 내야 하고 법정에까지 서야 하는 ‘딱한 처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소한 것 같지만 ‘좋은 기사’가 아닐까 싶다. 괜한 사람들까지 범법자로 만든 불법 선거운동을 저질러놓고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고 발뺌하는 한나라당과 엄 후보 측의 파렴치를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내준 기사도 없을 터이다.

경향신문의 이 같은 보도는 언론이라면 당연히 취재·보도해야 할 사안들이다. 다수의 신문과 방송들이 이를 외면할 때 경향신문은 말 그대로 원칙적인 보도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같은 ‘원칙’을 지면에 실현시키자면 발로 뛰는 기자들의 수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겨레21의 단독보도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부산저축은행 부당인출 사건은 그런 측면에서 경향 또한 보다 분발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라 할 만하다. 영업정지를 앞두고 은행 직원들이 VIP 고객과 지인들의 예금을 영업시간 후에 부당하게 인출해준 충격적인 사건이 드러나자 언론들은 앞다퉈 금융감독기관의 감독 소홀을 질타하는 기사를 쏟아냈지만, 정작 언론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VIP 고객 등에 대한 부당인출 사실은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만 제대로 취재해보았다면 지난 2월 당시에 이들이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말 검찰에 수사 의뢰까지 했다는데 언론과 기자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경향신문에도 그대로 던져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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