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포럼’ 역사관 유감

2005.02.01 17:57

〈김덕호/한국기술교육대학 교수·역사학〉

한국 현대사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모임인 ‘교과서 포럼’은 최근 창립선언문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미션 임파서블’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올바로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관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들은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수립될 때, 이승만 정권이 어떤 ‘미션’을 제시했기에 ‘미션 임파서블’을 달성했다고 주장하는가.

-우편향적 현대사 비판 곤란-

박정희 시대에 만든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듯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인가. 당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학교에서 집으로 갈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한국인 모두는 미션을 가져야만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션이 바로 이러한 미션을 뜻하는가.

이들의 역사 해석은 승자의 해석이며, 결과에 기초한 해석이다. 결과가 좋으니 과정이 어떠했건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개인의 인권이 전무한 그 시절조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또다른 문제는 누구에 의한 ‘올바른 역사’냐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 의해서’라는 암묵적 주어가 빠져 있다. 이들의 주장이야말로 후세인은 나쁜 놈이고, 나쁜 놈은 지상에서 제거돼야 한다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초한 부시식 해석과 비슷하다. 자신도 그릇되게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주장은, 자신들이 믿는 것은 절대로 틀릴 리가 없다는 주장과 다를 게 없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검인정 역사 교과서 파동이 이 나라를 들끓게 하고, 교과서 내용 수정을 강력하게 주장했을 때, 나는 한편으로 뜨끔했다. 왜? 그때 우리는 다른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 국정 국사 교과서를 갖고 있었다. 거의 유일사관에 입각해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통제했다. 일본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 집필을 허용하지만, 한국은 그것조차 허용치 않았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박정희 시절에 감히 4·19를 혁명으로, 5·16을 쿠데타로 국정 교과서에 기술할 수 있었는가. 인권 유린을 밥먹듯 한 당시에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는가. 만약 우리 사회가 진정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였다면 소수의 사람이 그런 식으로 해석해도 허용됐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21세기 초에 새삼스럽게 도덕 교과서도 아닌데 한국 현대사를 올바르게 써야 한다니 무슨 생각인가. 좌파의 해석이 올바르지 않다면, 우파의 해석만 올바르다는 말인가. 그들의 해석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20세기의 산물인 민족국가나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여전히 그들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학술적 균형감각 잃지말길-

게다가 그들은 기존의 한국 현대사 교과서들이 ‘자학사관’에 기초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어떤 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를 만들지 궁금하다. 혹시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 역사가 ‘자학사관’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들은 나르시시즘에 기초한 역사를 쓰겠다는 것인가.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의 해석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들도 새로운 교과서를 쓰면 된다. 비유컨대 제품도 아직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제품을 싸잡아 “잘못됐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상도의에도 어긋난다. 먼저 자신들의 신제품을 완성한 다음 소비자들에게 자신있게 제품을 써보라고 주장하라. 그렇게 되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판결이 날 것이다. 누구 제품이 더 좋은 것인지.

부디 ‘교과서 포럼’에 참석하신 분들께서는 교과서 문제에 학술적으로 균형감각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길 바란다. 역사를 통해서 자주 확인되듯이, 호랑이 등에 타고 달릴 때는 신나겠지만, 막상 내리려고 할 때는 뜻대로 잘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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