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위기와 자기성찰

2007.06.01 18:17

〈윤해동/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지난 5월17일 교육인적자원부는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통칭 ‘인문한국’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올해 37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향후 10년 동안 4000억원을 인문학 진흥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연구, 교육, 사회 등 3대 부분 9개 세부사업을 지원하며, 그중에서도 인문학 분야에서 장기 기획 연구가 필요한 ‘전략과제 연구’와 ‘한국학 분야 연구’ 등을 위한 인문학 연구소(단) 육성에 가장 많은 재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지역학) 연구소 40개를 양성하는 야심찬 내용이다. 지금까지 인문학 분야 연구 지원에 사회 전체가 무관심하고 인색했다는 점에서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지원 단기성과 집착말길-

이제 이 계획을 집행하는 일이 남았지만, 그와 관련하여 한두 가지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은 장기성과 간접성을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삼는다. ‘무용(無用)의 용(用)’이라는 말로 집약되듯이, 인문학은 직접적으로 상업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사회에 기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장기적인 연구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장기 지원을 원칙으로 삼은 것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만 환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 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자들에게도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규직 ‘국가교수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구태의연한 나눠먹기가 더 이상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인문학의 특성인 장기성과 간접성을 감안하여 집행 과정에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더욱 숙고하고 성찰할 시점이다. 이 계획이 마련된 배후에는 지난해 ‘인문학의 위기’ 선언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진단되지 않은 듯하다. 인문학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이 시점이야말로 인문학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진지한 자기 성찰이 동반되지 않은 채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면, 지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인문학 위기가 운위되는 사회적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인문학을 기피하고 상업화하는 현상이 강화될수록, 그런 현상 자체를 진단할 수 있는 인문학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진지한 성찰 학문수준 높일 때-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삶의 양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인간학이다. 인문학은 사회과학과 달리 사회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의 현존에 대해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을 속성으로 삼는다. 인문학이 근대적 삶의 현존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그런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인문학은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 물론 그 보편성이 가진 편파성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편성이 특수성과 무관한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삶의 양식이 가진 보편성을 확장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위기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동반하는, 그런 연구를 지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지원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근대 학문의 수준을 질적으로 끌어올리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인문학자들의 자기 성찰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재삼 강조해두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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