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문일치’ 한·일관계 기대

2009.10.01 16:45
황성빈|일본 릿쿄대 교수·미디어사회학

[시론]‘언문일치’ 한·일관계 기대

근대화의 척도라는 언문일치는 말하는 대로 쓰자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글’처럼 말하자는 것이었을까? 아마도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말은 사람마다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말하는 대로 쓴다면 그 언어는 폭넓게 읽힐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표준어로 정해진 ‘글’이 먼저 있었고, 그대로 말하자는 것이 ‘언문일치운동’의 실제 역사이지 않았을까?

‘글’과 ‘말’의 차이가 심한 일본

우리는 누구나 문어체와 구어체를 자동변환하는 훈련을 받으며 살아온 셈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변환되지 않기도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글’로는 적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글’로 적기는 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경우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정치에서도 경험하고 있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즉 본심과 겉으로 드러낸 입장을 구분하는 일본에서는 특히 그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이유는, 일본 새 총리의 외교 데뷔 무대가 되었던 G20 서미트 관련 소식을 보고 듣고 읽으면서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다음 개최지로 결정된 데 주목이 모아진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먼저 보고 듣는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일본의 존재감’이 키워드였다. 일요일 아침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외무성의 설득으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G8에서 G20으로 이행하는 데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히도록 했다는 얘기를 상세히 전했고, 많은 방송 뉴스에서는 ‘일본의 존재감’ ‘중국의 부상’이라는 말이 되풀이되었다.

이에 비해 각 신문의 보도를 보면 더 다양한 정보와 논조를 발견할 수 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각각 ‘위기 억지의 차원을 넘어서자’ ‘위기를 진보로 이어가자’며 G20의 정례화에 조심스러운 기대를 밝힌 한편, ‘보수’로 분류되는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은 신중론을 펼쳤다. 특히 산케이신문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선진 7개국이 세계경제를 리드하는 역할은 끝나지 않았고, G7에는 자유주의경제의 발전을 지탱해온 거시경제정책의 오랜 축적이 있기 때문에, 회의 참가국이 많아질수록 일본에 대한 기대도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의 역할론에 대한 나르시스트적인 집착을 밝히고 있다.

‘무라야마 담화’와 다른 말 없길

주목해야 할 점은 보수적 신문의 논조가 텔레비전 매체와 공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신문매체가 전하는 다양한 관점은 텔레비전에서는 다 전달되지 못하고 일부 신문의 알기 쉽고 말하기 쉬운 방향으로 의제가 설정된 것이다. 즉 글의 뉴스와 말의 뉴스 사이에는 중요한 괴리가 있었던 것인데, 어느 정도는 인쇄매체와 전파매체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송의 뉴스가 더 다양하고, 심도 있는 경우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요사이 일본의 여론은 신문이나 종합잡지가 아니라 텔레비전과 주간지(선정적인) 등의 대중적 미디어가 리드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필자에게는 ‘글’보다는 ‘말’의 언론이 더 파워풀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종전 50주년’을 기념해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작성해놓고도, 많은 극우파 정치인들이 다른 ‘말’들을 되풀이해온 지난 10여년간의 ‘언문의 불일치’도 같은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새 정권 출범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서로가 ‘글’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언문일치적 관계’가 정립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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