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정부가 칼을 뺄 차례다

2013.06.07 21:26 입력 2013.06.07 22:32 수정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최근 비영리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의 명단 공개로 국내 재벌가와 고관대작들의 조세 도피와 역외탈세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나 파장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신흥개발국 가운데 한국의 해외 재산도피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3위에 이를 정도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이처럼 조세 도피와 역외탈세가 심각한 줄 그동안 한국 정부는 과연 몰랐을까? 우리 연구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적으로 ‘조세도피처’나 ‘조세정보 비협력국’으로 분류되는 41개국으로 흘러간 국내 투자액 추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2005년까지 10억달러에 미치지 못하던 투자액이 2006년 이후 급증해 2007~2012년 50억~60억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조세도피처로 향한 투자 규모가 불과 몇 년 새 5~6배나 급증한 것이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재벌 3, 4세 승계 등을 앞두고 해외법인 설립을 통한 투자 형태로 자산을 외국에 빼돌리거나 자금 세탁을 거쳐 상속하려는 시도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한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는 3년 전쯤 “요즘 재벌가들이 국내 재산을 해외로 엄청나게 빼돌리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시론]역외탈세, 정부가 칼을 뺄 차례다

특히 조세도피처에 투자된 법인당 투자 규모가 조세도피처를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법인당 투자 규모보다 2배 이상 크다. 대부분 조그만 섬나라인 곳에 흘러간 법인당 투자 규모가 오히려 훨씬 큰 것이다. 실제로 조세도피처에 대한 투자액은 이 지역들에 대한 수출액과 거의 상관관계 없이 늘어났다. 이는 투자액과 수출액이 일정하게 연동하는 조세도피처 이외 지역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른 흐름이다.

더구나 정부에 신고하지 않은 채 국내 재벌 등 부유층이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등을 노리고 불법으로 국내 재산을 빼돌린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불법 자금들은 정식 신고된 투자금과 뒤섞여 각종 복잡하고 은밀한 금융거래나 가공의 금융거래를 통해 은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실태를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은 관세청과 수출입은행이 공개하고 있는 원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흐름이 확연해진 이명박 정부 내내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따르면 그동안 국세청과 관세청, 금감원 간 정보 공유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2010~2012년 50억원이 넘는 불법 외환거래 38건에 대한 형사처벌은 전무했다.

실은 지금 ‘뉴스타파’가 발표하는 명단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겨우 2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회사에서 나온 정보들을 확인했는데도 이 정도이니 실제로는 얼마나 더 심각할까. 특히 역외탈세를 노리고 도피한 재산들은 법인이 아닌 신탁(trust) 형태로 위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신탁의 형태로 된 것은 현재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결국 열쇠는 정부가 갖고 있다. 국세청과 관세청 등 정부 당국은 훨씬 많은 관련 자료와 인력을 갖고 있으며, 관련 국가들로부터 조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물론 다국적기업이나 슈퍼리치 등에 대한 글로벌 과세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역외탈세 추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국은 실태를 파악하고 추적하려는 노력조차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일례로, ‘뉴스타파’가 발표한 명단이 정부에 신고된 투자인지 아닌지는 당장이라도 확인할 수 있지만 아무런 발표가 없다. 결국 정부 당국을 움직이게 하는 건 납세자인 국민의 관심과 분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계속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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