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일 갈등조정자로 나서라

2013.12.01 20:47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원광대 초빙교수

일본을 겨냥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이 지난달 23일 전격적으로 선포됐다. 이 구역에서 미국은 일찍부터 일본 편을 들고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중·일 간 갈등에서 미·중 간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제주도 남단에 위치한 이어도가 포함됨으로써, 미·중·일 간 ‘고래싸움’에 한국이 ‘등’ 터지게 생겼다.

[시론]한국, 미·중·일 갈등조정자로 나서라

방공식별구역이 선포된 후, 우리 정부는 아직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미·중·일 각국이 국익을 다투는 구역 내 복합적 갈등에 대해 우리 정부가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보면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1971년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유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갈 당시만 해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중화부흥’을 외치면서 할 말은 하는(有所作爲) 시진핑 체제하의 중국은 댜오위다오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 같다. 자신의 국익을 적극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댜오위다오가 포함된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이 같은 정책 의지를 상징한다.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대립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고 나섰다. 동북아에서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이에 맞서는 중국의 패권다툼이 시작됐다.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만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신형 대국관계’를 수립하자고 한 약속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는 미군의 서태평양 훈련장 3곳, 댜오위다오, 이어도가 포함돼 있다. 이어도가 포함됨으로써 한국도 어떤 차원에서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국의 인줘(尹卓) 해군소장은 지난달 25일 한 발 더 나아가 이 방공식별구역을 서해, 남해까지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방공식별구역을 전격적으로 선포한 선례를 보아, 확장 사안도 우리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이 구역 내에서 미·중·일 간 군용기의 공중대치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도 미·일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 구역 내의 군사적 긴장상황에서 일단은 비켜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혹시나 배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염려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입장에서 볼 때, 중·일 간 갈등이 심화되면 자동적으로 그 피해가 한반도까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된 이어도는 영토가 아닌 수중암초다. 그러나 아직 한·중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어도가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됐기 때문에 앞으로 한·중 간 주변수역 관할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 속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야 없겠지만, 국익을 잠식당하고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사안에 따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많아짐에 따라,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과 건설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설명했다. “동북아 지역은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협력은 진전되어 있지만, 정치안보 협력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내 국가 간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라고. 미·중 간 경쟁과 중·일 간 갈등이 가라앉지 않는 이 상황이 오히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갈등의 한복판에서 살짝 비켜 있는 한국이 조정자로 나서야 한다. 우리 외교부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첫 사업으로 갈등 당사자인 미·중·일을 중재하든지, 아니면 한국도 참여하는 4자회담을 주재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