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다시 국가를 묻는다

2015.04.13 21:04 입력 2015.04.13 21:18 수정
조대엽 |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사회학

그날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생명이 차가운 물속으로 사라진 후 그 엄청난 충격에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릴 때, 대통령을 포함한 이름 있는 정치인들은 한입처럼 말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그리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시간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지도 않았다. 아니, 대한민국의 시간은 2014년 4월16일에서 멈추었고, 나라는 그곳에 정지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지난 1년은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버리는가를 고통스럽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냉혈한 국가, 배반의 정치, 기만의 정부를 국민의 가슴속에 심는 시간이었다.

[시론]세월호 1년, 다시 국가를 묻는다

지난 1년간 세월호 프레임은 우리에게 세 가지 유형으로 다가왔다. 온갖 비정상의 총합과도 같았던 세월호의 운항과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의 근본에는 무능하고 고장난 정부가 있었고 그 뿌리에는 탐욕적인 해운업자와 이른바 ‘해피아’가 얽혀 있었다. 고장난 정부의 자성은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으로 이어졌다. 비록 군국주의의 냄새가 배어 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대한민국이 개조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바뀔 수만 있다면 저 어린 죽음들이 헛되지 않으리라 애써 위안했다.

국가개조론은 국민의 기대를 묶는 하나의 프레임이 되었다. 세월호 정국이 길어지면서 ‘국가 개조의 프레임’은 국민들에게 증오와 적대를 심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은 여야의 특별법 합의를 재촉했고 보수 언론은 ‘세월호 피로증’을 언급했다. 극우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인터넷 극우 사이트, 이른바 일베 회원들은 유족과 시민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는 극단의 행동을 자행하기도 했다. 종북몰이가 동반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월호의 유족이나 그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은 더 이상 대통령과 여당의 국민이 아니었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을 둘로 갈라 적대를 만드는 ‘두 국민 프레임’을 확산시켰던 것이다. 국가 개조의 프레임과 두 국민 프레임은 이제 ‘망각의 프레임’으로 바뀌고 있다.

특별법의 제정과 특별조사위 활동이 참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최근 발빠르게 특별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세월호의 인양과 진상규명보다 보상금 내용을 서둘러 강조했다. 정부의 입장은 이제 잊을 건 잊고 산 사람이 사는 쪽으로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읽힌다. 망각의 프레임을 강요하는 것이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으라고 강요하면 잊을 수 없는 이들의 가슴은 내면으로 병들기 마련이다. 망각의 프레임은 증오의 프레임을 잉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자살, 노인 빈곤, 교통사고 사망과 같은 세계 제일의 불행지수들이 넘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어떤 지표들보다 세월호 프레임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내면이 갈라지고 깨어지는 균열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치유의 과정은 없고 안으로부터 깨어지고 갈라져 균열의 틈으로 인해 고통받는 ‘내파사회’(內破社會)가 되고 말았다. 가학적 정부의 보이지 않는 고문이 국민들을 갈라 그 상처로 인한 증오와 적대가 어떻게 쌓이는지를 온전히 확인한 1년이었다.

세월호 1년, 다시 국가를 묻는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바라는가? 내파사회를 치유하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가, 다른 민주주의, 다른 패러다임의 정치를 선택하는 데 있다. 국가와 정치와 민주주의가 국민의 생명과 삶과 아픔에 직접 닿아 있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실천해야 한다. 국가와 정치와 민주주의가 추구하던 모든 껍질과 가식을 내려놓으면 남는 알맹이는 국민의 삶이요 생활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삶을 살리는 정치를 제공하고, 우리 삶을 살리는 정치를 선택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아주 구체적인 개인생활의 현장, 주민생활의 현장, 지역적 삶 속에 새로운 시대의 국가적 과제와 지구적 과제가 공존하고 있다. 그 삶 속에 국가가 있고 정치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국가가 디자인하는 정책과 제도는 시민의 생활과 맞닿아 있어야 하고 시민의 고통과 아픔을 직접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생활을 결합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진화된 민주주의의 과제다. 해체되고 버려진 개인의 생활을 공공적이고 민주적 질서로 재구성하는 ‘생활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정책과 제도를 국민의 삶을 향하도록 설계하는 ‘생활국가’, 냉전 이념의 틀을 벗고 생활의 현장을 네트워크로 결합하는 ‘생활정당’의 패러다임이야말로 내파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출발이다. 세월호 1년, 우리 삶을 바꾸는 새로운 선택은 국민의 몫이고 깨어 있는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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