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이브’의 시민권

2003.01.02 18:44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인간은 아담, 다음은 이브다. 창세기는 이브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과학자들은 인류 기원의 과학적 규명에 관심을 쏟아왔다. 지배적 학설은 ‘이브 기원설’이다. 현대 인류의 직접적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생존한 ‘한 여자’의 자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여자에게 ‘이브’란 이름을 붙였다. 어머니를 통해서만 자식에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다. 과학자들은 또 남성을 결정짓는 성염색체의 하나인 Y염색체를 이용, 인류의 아버지인 아담도 추적했다. 아담의 생존시기와 지역도 이브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인류의 공통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1명씩이 아니라 아담은 10명, 이브는 18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종교단체 ‘라엘리안 무브먼트’ 산하 인간복제회사 클로네이드는 얼마전 미국인 여성이 세계 최초로 복제아기(여아)를 낳았다면서 이름이 ‘이브’라고 밝혔다. 진짜 복제인간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름만은 예사롭지 않다. 라엘리안은 2억5천만년 전 외계인이 복제기술을 통해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는다. 또 인간이 언젠가 신이 되어 생명을 창조하고, 다른 행성에 복제인간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복제아기 ‘이브’는 새 인류의 조상이 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복제아기를 낳았다는 여성이 아기 시민권을 신청하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문제로 고민중이라 한다. 사실 복제인간도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 생물학적으론 인간이라 하더라도 과연 영혼은 있는지…. 복제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끝이 없다. 이나 저나 ‘이브’가 고작 미국 시민권 시비에 휘말린다면 새 인류의 시조치고는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비춰질 것 같다.

〈노응근 논설위원 han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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