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주부강도

2003.09.01 18:18

미국에서 은행강도 행각을 벌인 뒤 해외로 달아났던 남녀가 남아공에서 8년 만에 붙잡힌 적이 있다. 마이클 프리처드와 노바 거스리라는 이들 남녀는 1993~96년 애리조나, 콜로라도, 몬태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리건 등 6개주를 돌며 은행을 털어 명성을 날렸다. 이들은 주로 아침이나 업무 종료시간에 은행을 습격, 행원들을 총으로 위협한 뒤 현금을 강탈했다. 조사 결과 2백만달러 대부분을 유흥비나 주식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공황때인 1930년대 전설적 혼성 2인조 강도인 클라이드와 보니도 남녀 강도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보니와 클라이드)의 실제 주인공들이기도 한 이들은 혼성강도의 원조격이다. 당시 미국의 암울한 경제상황과 황폐해진 젊은이들의 방황을 드러낸 이 사건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흔히 죽이 잘 맞는 짝을 ‘보니와 클라이드’라 부르게 된 것도 이때 부터다.

여자의 강도행각은 이념, 사랑 등 이유도 다양하다. 세 자녀의 엄마로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세라 올슨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녀는 1970년대 초 은행강도, 언론재벌 상속녀 패트리셔 허스트 납치 등으로 공포에 떨게 했던 극좌단체의 단원임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다. 본명이 캐슬린 슬라이어인 그녀는 TV의 ‘긴급수배’ 프로에 자신의 사진이 방영된 뒤 24년 만에 체포됐다.

인도의 산적여왕 폴란 데비는 빈민층 출신으로 기득권 세력과 싸운 ‘의적(義賊)’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부유층 남자 22명을 차례로 살해하고, 빈민지역인 우프라 프라데시에서 산적을 이끌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밴디트 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지난주 청주 새마을금고 여자강도 사건은 카드빚에 쪼들린 20대 가정주부의 짓으로 드러났다. 주식투자 실패에 따른 거액의 카드빚과 무직 남편 등 딱한 사정이 초보 주부강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부를 우선 탓해야겠지만 우리사회의 건강성에 적신호가 켜진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김용재 논설위원 sua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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