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오체투지(五體投地)

2009.05.01 18:08
박성수 논설위원

오늘은 불기 2553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청계천과 종로통에는 연등(蓮燈)이 꽃길처럼 이어져 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연꽃등에 불을 밝히는 연등(燃燈)축제가 절정을 이룬다. 초파일마다 절 밖으로 튀어나와 거리를 장식하는 연등은 빌딩 숲을 꽃단장하는 것 같아 언제보아도 화사하다.

[여적]오체투지(五體投地)

수줍은 여인의 얼굴 같아 아름다운 연등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불교적 의미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불교에서 등(燈)은 중생의 미혹과 무명(無明)을 걷어내는 지혜의 상징이며, 연등(燃燈)이란 지혜의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불을 밝힌다는 사실보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낸다’는 점에서 치열한 고행의 의미가 담겨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도 스스로를 태우기 위해 땅바닥을 기는 사람들이 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이끄는 오체투지 순례단이다. 삼보일배(三步一拜)로 이미 혹독한 고생을 치렀던 두 사람이다. 무릎 부상으로 지팡이 신세를 졌던 수경 스님의 경우는 망가진 몸이 온전치도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고행길이다.

이들은 왜 또 길바닥으로 나선 것일까. 수경 스님은 지난해 9월 지리산 노고단을 떠나며 우리 사회를 욕망이 난무하는 승자독식 사회라고 개탄했고, 문 신부는 용산참사와 남북불신의 현실을 아파하며 북녘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무엇보다 두 고행자가 선택한 오체투지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민다. 한마디로 땅바닥을 기는 것이다. 지렁이처럼 기어서 순례단을 이끌고 묘향산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가혹한 형벌이자 극단적인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불자가 삼보(三寶)께 올리는 큰절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인도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세 중 가장 낮은 것이고, 보행의 움직임 중 가장 느린 것이다.

불탄일을 맞아 오체투지를 실천하고 있는 두 종교인의 고행의 의미를 새겨본다. 그들의 염원이 갈라진 우리의 마음을 묶어주고, 철책선을 녹여 묘향산까지 다다르기를 기원해본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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