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양배추 김치

2010.10.01 21:30
김태관 논설위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프랑스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낭비의 대명사로 불리며 프랑스혁명을 재촉했다. ‘빵 대신 케이크’라는 말은 그녀가 세상물정과 민생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널리 회자된다. 어느 신하가 가뭄으로 국민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말하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뜸 그와 같이 대꾸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실은 루이14세 부인의 말이라고 한다.

[여적]양배추 김치

우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춘궁기라서 국민들이 굶고 있다”고 진언하자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한국 물정을 잘 몰랐던 대통령 부인의 말이라는 설도 있고, 빵이 아니라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 황당한 발언의 주인공은 서진(西晉)의 혜제(惠帝) 사마충이다. 그는 중국의 3대 바보 황제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

사마충은 바보 중 바보였지만 황실 내부 세력다툼의 결과로 황제가 됐다. 그가 얼마나 덜떨어졌는지 이런 이야기가 내려온다. 어느 날 개구리 울음이 들려오자 사마충이 정색하고 물었다. “저 개구리들이 지금 공적(公的)으로 우는가, 사적으로 우는가?” 신하가 답했다. “궁궐에서 우는 것은 공적이고, 들에서 우는 것은 사적입니다.” 우문현답인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둘 다 웃기는 우문우답이다. 한번은 가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이 속출했다. 신하가 이를 보고하자 바보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쌀이 없으면 고기라도 먹어야지, 어째서 굶어 죽는단 말이오?”

이명박 대통령의 양배추 김치 발언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배추값이 비싸니 내 식탁에는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배추도 배추 뺨치게 비싸니 이는 말이 안 된다. 대통령의 충정은 알겠지만, 국민들의 실정은 모르는 발언이라고 하겠다. 어떤 이는 “쌀 대신 고기 먹으라는 격”이라며 열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배추든 양배추든 정색하고 따지기는 좀 그렇다. 앞서 든 ‘개구리 문답’처럼 입에 담으면 둘 다 우스워지는 코미디일 뿐이니 말이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