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동물의 법적 지위

2017.12.01 20:49 입력 2017.12.01 20:58 수정
조호연 논설위원

한 남성이 “길을 들이겠다”며 이웃집 반려견을 쇠파이프로 무차별 구타했다. 한쪽 눈을 잃고 턱이 부러진 반려견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외출했다 귀가한 주인 가족은 참혹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특히 반려견을 친동생처럼 여기던 딸은 거의 까무러칠 정도였다. 반려견은 고통 속에 신음하다 결국 숨졌다. 남성은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재물손괴. 2015년 발생한 ‘백구 해탈이’ 사건의 전말이다.

안타까운 해탈이의 죽음은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폈다. 동물을 물건으로 해석하고 있는 민법 제98조 개정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동물권단체인 ‘케어’는 민법 개정을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상태다. 동물이 사람과 물건 사이 ‘제3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는 게 이들의 목표다. 동물과 사람의 관계에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동물이 생명을 가진 보호대상임을 법에 명시한 바 있다. 미국과 대만은 동물학대를 주요 사회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두 나라에서 동물학대로 적발되면 신상이 공개된다. 거의 성폭행범 취급이다. 동물학대자들이 사람에 대한 폭행과 살인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 상승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라고 하지만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축산업계나 육견협회 등에서는 사생결단으로 반대하고 있다. 보호대상 동물이 어디까지인지 기준도 논란거리다. 식용돼지, 소, 닭 등은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야생동물은 또 어찌할 건지 과제가 많다. 가축전염병 창궐 시 대규모 살처분 문제도 있다.

동물 학대와 관련된 영국 법은 시사를 준다. 영국은 척추동물인가 아닌가를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문어, 오징어도 척추동물 대우를 받게 되었다. 같은 연체동물인 굴 따위와는 달리 대단히 정교한 신경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의지다. 동물의 법적 지위 격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어제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동물권단체 케어가 민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작은 출발이지만 큰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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