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충청도 사투리

2019.11.27 20:47 입력 2019.11.27 20:50 수정

“발 있으면 따라오등가.” 부장이 혼잣말하듯 툭 던지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석달 전 ㄱ씨(35)가 서울에서 대전지사로 근무지를 옮긴 첫날, “뭔 말인가 했다”는 충청도 화법이다.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이다. 그 점심부터 충청도에서 듣고 접한 대화는 ㄱ씨 스마트폰에 쌓여가고 있다. “참외 파는 거예요?” “그럼 뭐하게유”로 시작하는 좌판 대화는 고전 격이다. “5000원?” “냅둬유 개나주게.” 돈을 치르고 “빨리 싸주세요” 하면 또 따라붙는 말이 있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시유.” 수틀리면 나오는 “냅둬유 개나주게”는 2010년 정초 MB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놨을 때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이 써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졌다.

축약과 해학. 충청도 사투리를 상징하는 두 단어다. 충청도 말엔 복모음(ㅕ, ㅠ, ㅑ)이 많다. 개 혀?(보신탕 먹어)-한술 뜰겨?(밥 한그릇 할 거야)-겨? 아녀?(맞아 아니야)-좀 봐유(잠깐 얘기해요+실례합니다) 하는 식이다. 무도장에서는 ‘출튜?’, 잠자리 들 때도 “헐겨?” “혀” 세 자면 통한다. 희극인 30~40%는 충청 사람이다. 이 고장에는 직설보단 에둘러서, 은유와 재치로 말하는 게 몸에 밴 사람들이 많아서다. KBS <유머1번지>엔 충청도판 ‘괜찮아유’ 코너가 있었다. 그릇이 깨져도 집주인은 끄떡 안 한다. “깨지니 그릇이지 튀어오르면 그게 공이유~.” 김소월의 시 ‘진달래’도 충청 사투리 버전이 압권이다. “이제는 지가 역겨운감유”로 시작해 “가슴 아프다 말 것지유. 어쩌것슈. 잘 먹고 잘 살아유”로 끝난다. ‘거시기’ 하나가 백제·신라군의 전세를 바꾼 코믹 영화 <황산벌>도 있었다. “몇번 찍으셨어요?” “될 사람 찍었겠쥬.” 선거 여론조사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곳도 충청도다.

충청도 사투리가 드라마·영화에서 ‘주인공의 말’로 뜨고 있다. 시청률 23.8% 찍고 종영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순경 용식), MBC 드라마 <두번은 없다>(박하), 코믹좀비 영화 <기묘한 가족>(만덕)에서다. SNS에선 ‘이 옷 이쁘냐?’가 용식이체 ‘워뗘? 환장하쥬?’로 바뀐다. 충청도 사투리는 느리지만 상처주는 직설이 적고, 해학 속에 “배워서 남주남유?”처럼 뼈 있는 말도 많다. 충청 사투리가 늘면 각박한 세상이 조금 더 정겨워지고 웃음이 많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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