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인터뷰](6) 기수교육팀장·재결위원 이용우

2000.09.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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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함께 27년째 살아온 사람. 경마장의 즉결 심판관. 가장 잘나가는 리딩자키 박태종을 처음으로 키운 조교사. 한달 수입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자리로 스스로 보직을 바꾼 바로 그사람. 이용우 기수교육팀장(45)은 그런 사람이다. 재결위원도 겸하고 있다. 그는 항상 바쁘다. 한가지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 세상에 두가지 일을 떠맡아 하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기수교육이 주업무다. 그러나 경마가 열리는 주말이면 경마장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재결위원이 된다. 물론 사무실도 따로 있다.

태어날때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때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이사를 많이 다녔다. 그만큼 먹고살기가 힘들었다. 출생신고도 제때 못할 정도로… 그래서 그의 호적나이는 실제보다 3살이나 줄었다. 출생지인 통영에서 젖먹이때 풍기로 이사와 3년을 살았다. 다시 파주 용주골에서 3년을 산다. 초등학교는 금촌에서 다닌다. 금촌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지금은 없어진 한양공고 공예과에 들어갔다. 가난을 이겨내려고 항상 발버둥치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무슨일이던지 젖먹던 힘까지 쏟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몸에 배었다. 그가 경마인생이 된것도 가난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무렵 신문에 난 기수모집 공고를 보고 망설임없이 지원했어요. 침식제공이라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당시 취직도 힘들뿐 아니라 무엇보다 마음놓고 먹고 잘수 있다는데 그이상 더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72년 기수후보생으로 들어와서 이듬해에 정식기수가 된다. 그는 항상 선두에 섰다. 무슨 일을 하던지 상대보다 앞서나갔다. 기수때 성적 역시 선두권. 현역동기인 백원기기수와 쌍벽을 이뤘다. 기수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500승 가까운 승수를 기록했다. 조교사 한명이 3명의 기수를 거느리고 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 아닐수 없다. 기승할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말을 옆에서 보면 무섭다가도 일단 일단 말에 오르기만 하면 겁이 없어져요. 불의를 보면 못참는 성격이라 선배들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아니다 싶으면 선배에게 대들곤 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해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나름대로 고쳐나갔습니다."

중1때 부친이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2학년때 어머니까지 병으로 쓰러졌다. 그때부터 신문을 돌렸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침저녁으로 신문배달을 했다.

"중학교를 마친후 서울로 유학을 왔습니다. 신문배달을 아침저녁으로 했어요. 아침에는 조간신문을 그리고 저녁에는 석간을 돌렸습니다. 그돈으로 생할비와 동생 학비까지 해결했어요. 먹고 잘곳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집이 어디냐고 친구가 묻더군요. 갈데가 없다고 하자 친구는 친척집을 소개해 주었어요. 그길로 숙식이 해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들어가서 보니 그집이 바로 최불암씨 집이더군요."

27년을 말과 함께 살아오다 보니 말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 말을 보기만 해도 컨디션이 어떤지 알수 있다. 미세한 감정까지도 느낀다.

"말의 지능을 사람으로 치면 3∼4살아이보다 약간 떨어지는 정도라고 봅니다. 말은 소심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지요. 기억력 하나는 타고난 동물입니다. 한번 혼쭐이 난 자리는 죽어도 안가려고 합니다. 특히 폭이 좁은 코너는 본능적으로 싫어하지요. 발주기에 안들어 가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말은 또한 군집성이 있어서 뭉쳐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경쟁심도 강하구요. 그런 말의 경쟁심리를 이용해서 경마를 합니다."

조교사때도 그는 최고로 명성을 날렸다. 상금을 가장 많이 받았다. 승마업계에서 계속 1인자로 유지해 왔다고 자부한다. 고생도 많이 했다. 국민기수로 떠오른 리딩자키 박태종을 처음으로 조련시킨 주인공이다. 못뛰는 다른마방의 말을 가져와 좋게 만들어 성적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다소 능력이 떨어지는 말일지라도 다스리기만 잘하면 재목으로 큰다는 것을 믿는다.

"좋은 재목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골라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어 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더 노력을 해야 하니까 물론 몸은 피곤하겠지요."

그러던 그가 잘나가던 조교사를 그만두는 사고를 친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85년쯤이었어요. 당시 교육계장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제안을 하더라구요. 마술학 교관이 없는데 전문적으로 후보생교육을 맡아주면 어떻겠는지 말입니다. 처음에는 물론 거절했지요. 그러나 6개월정도 지나니까 은근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찾아갔지요. 정식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상관이 그러더군요. 자리를 옮기면 월급도 대폭 줄어드는데 ####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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