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인 뉴스]‘사내 왕따’ 복직투쟁 정국정씨

2002.06.01 18:43

노동계 최초로 ‘사내 왕따’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로 산재 인정을 받았던 정국정씨(39)는 아직도 회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의 첫마디는 “지금 저는 ‘현재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의 법정투쟁과 언론보도 등을 시기별로 정리한 세뭉치의 서류파일을 내밀었다. 원래 뭐든지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꼼꼼한 성격이냐고 물었더니 “저들이 하도 말바꾸기를 잘 해서 아무리 사소한 것도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정씨는 자신을 내쫓은 기업 간부들과 일방적으로 회사 편만 드는 경찰, 검찰, 노동부 관리들을 ‘저들’이라고 통칭했다. “회사에서 쫓겨난 뒤 복직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때부터 혼자서 죽자사자 공부했지요”

세뭉치의 서류파일 속에는 5년 세월의 싸움과 세상 공부가 담겨 있었다. 지난 세월을 ‘청운의 꿈’ ‘은따’ ‘눈물의 파노라마’ ‘현재’로 구분했다. 그것은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입성한 ‘촌닭’이 ‘모난 돌’로 찍혀 거리로 내쫓긴 뒤 ‘싸움닭’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대졸 공채로 대기업 전자회사에 입사한 1988년, 처음 서울땅을 밟았다. 그는 고향인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서울에 취직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성공하겠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다”고 그는 입사 당시를 회고했다. 그런 그에게 서울은 언제나 기회의 땅이었고, 기회는 조금씩 실현되는 듯했다. 입사 3년차이던 91년 동기보다 빨리 미국에 출장가는 행운을 잡았고, 93년에는 사내 청년임원회 회원으로 발탁돼 사장에게 직접 회사운영 아이디어를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꿈이 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곤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정씨의 서울생활 초기는 청운의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회사를 위해 비리를 고발했는데 조직은 저를 배신자로 몰았습니다”

96년 11월 컴퓨터 고객지원실 대리로 근무하던 정씨는 직장 상사가 컴퓨터 부품을 특정업체로부터 터무니없이 비싼 값으로 구매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회사 감사팀에 제보했다. 제보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정씨는 반드시 비밀을 지킨다는 감사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이미 그는 회사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그때부터 은밀한 왕따, 소위 ‘은따’가 시작됐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수시로 장소를 바꿔 정씨를 따돌리거나,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무안을 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당시 그는 ‘나는 옳은 일을 했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하지만 98년, 99년 연거푸 승진에서 탈락한 뒤 정씨는 노골적인 사퇴 종용에 시달려야 했다.

“그 다음부터는 눈물의 파노라마죠”. 정씨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회사는 복직명령까지 받고도 끝내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회사에 도착한 정씨는 자신의 책상과 사물함이 깨끗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회사 e메일 ID까지 회수된 뒤에는 매일 업무도 없이 우두커니 창가에 서 있어야 했다. 직원들 앞에서 ‘밥법레’라는 모욕을 듣는가 하면, ‘정대리에게 절대 개인 비품을 빌려주지 말고 상대도 하지 말라’는 내용의 왕따메일이 발송되기도 했다.

정씨는 온갖 설움을 당하면서도 ‘이런 부당한 조치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는 오기로 버텼다. 하지만 회사는 결국 2000년 2월1일 졸도로 쓰러진 그를 무단외출로 트집잡아 징계해고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복직투쟁이 시작됐다. 그를 위해 진정서를 만들어 직접 서울로 올라온 고향 어른들의 도움과 “너는 많이 배웠으니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끝까지 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큰 힘이 됐다. 정씨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게 어머니의 지론이었는데 말이죠”라며 허허롭게 웃었다.

“침묵은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방치하는 행위입니다. 저처럼 내부고발로 피해보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지난해 ‘사내 왕따’로 산재 인정을 받았고, 노동위원회로부터 원직복직 명령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도리어 그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요즘 정씨는 사이버 노동조합(www.lgnews.co.kr)을 만들어 회사의 부당행위를 감시하고, 자신의 경험을 밑천삼아 해직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회사를 상대로 3년째 소송을 하다보니 반(半) 전문가가 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해고 여성노동자 4명을 복직시키고 1인당 3천만원씩 위로금까지 받게 해줬다니까요”

이제 정씨의 남은 꿈은 ‘복직한 다음날 퇴사하는 것’이다. 청춘을 바친 회사로부터 정말 자신이 옳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다시 예전같은 내부고발의 순간이 와도 역시 똑같은 길을 선택할 겁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정씨의 말은 지난 세월의 회한으로 잠시 흔들렸지만 그의 선량한 눈빛만은 단호하게 빛났다.

〈신현기기자 n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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