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이 아닌 산 갯벌 봤다면…얼마나 멋진 잼버리가 됐을까”

2023.08.15 20:21 입력 2023.08.16 14:10 수정

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이 보는 새만금

황윤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수라> 상영회를 한 후 경향신문과 만나고 있다. 황 감독의 상세한 인터뷰는 12일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이뤄졌다. 서성일 선임기자

황윤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수라> 상영회를 한 후 경향신문과 만나고 있다. 황 감독의 상세한 인터뷰는 12일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이뤄졌다. 서성일 선임기자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동물원에 갇힌 아기 호랑이 크레인의 삶을 보여준 <작별>(2001)을 시작으로 <침묵의 숲>(2004), <어느날 그 길에서>(2008),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 등 인간 활동의 결과 죽어가는 동물, 자연을 일관되게 그려왔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를 인용해 “작가가 이야기를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야기가 작가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모든 작품의 소재가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것이다. 전북 군산에 살며 2015년부터 7년 동안 담아낸 갯벌과 사람 이야기 <수라>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스카우트 대원에 ‘수라’ 보여줬더니 “이젠 실상 알았다”며 감사
새만금 사업, 단순 환경 파괴 아닌 국가 폭력이자 인류에 대한 범죄
수라갯벌은 아직 살아있어…육화됐다는 정부, 한번 와 보고 얘기해야
모든 생명은 연결된 운명 공동체임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 담아

 지난 12일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원들이 머물다 간 해창갯벌 매립지에서는 뒷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텐트가 있던 자리에서 물새 여러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 동행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이 갯벌도 아직 살아 있다”고 말했다.

 2006년 대법원 판결로 방조제 공사가 끝난 뒤 새만금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사이 강 하구 모래를 퍼올려 갯벌을 메우는 일에 매년 7000억~8000억원의 세금이 “녹아 없어졌다”. 2023년 갯벌의 존재를 새삼 일깨운 두 사건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의 개봉과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개최다. 영화는 갯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남아있고, 그곳에서 생명들이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수라>의 포스터.

영화 <수라>의 포스터.

 반면 잼버리 대회는 새만금 개발의 본질을 드러냈다. 엄청난 국가예산을 낭비했으며 세계 청소년들을 새만금 개발의 ‘그린워싱’에 이용했다. 이 사건은 생태계 파괴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 일깨웠다. 기후위기에는 누구나 힘들다. 약자들은 그 고통을 더 심하게 겪는다. 그중에 젊은 세대는 앞으로 더 긴 세월을 악조건 속에서 살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징표인 폭염에, 나무 한 그루 뿌리 내리지 못한 갯벌 매립지에서 생존하도록 내던져진 4만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겪은 고통은 기후위기 시대에 이들 세대가 처한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지 모른다.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과 더불어 좀 더 길고 포괄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영화 <수라>로 새만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갯벌 수라(繡羅·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로 오동필 단장이 붙여준 이름이다)를 세상에 알린 황윤 감독의 얘기를 들어봤다. 황 감독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전북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이뤄졌다.

 - 잼버리 대원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그만한 아들을 둔 엄마로서, 그 청소년들이 해창갯벌 매립지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어요. 잼버리는 청소년들이 야외 활동을 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보호하자는 취지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텐트 밑에는 대학살이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죽음이 깔려 있어요.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매립 과정에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개와 도요새, 물고기가 죽었어요. 그 갯벌에서 죽은 어민도 있고요. 그 청소년들이 죽음의 땅이 아닌, 살아 숨쉬는 갯벌을 보고 느끼고 저어새 같은 귀한 철새들을 탐조했다면 얼마나 멋진 잼버리가 됐을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제 영화를 통해서라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스카우트 대원들을 위한 <수라> 상영회를 열게 됐어요.”

영화 <수라>의 한 장면. 황윤 감독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황윤 감독 제공

 - 대원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태풍이 상륙한 날 스웨덴 대원 100명, 스위스 대원 200명 정도가 각자 영화를 봤어요. 저는 천안에 있던 스웨덴 대원 100여명과 함께 봤어요. 영화를 본 대원들이 제게 다가와 가슴 벅찬 표정으로 말하고 안아주었어요. ‘지도에 야영장 끝에 바다가 그려져 있길래 끝까지 걸어가 봤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바다가 나오지 않아 이상했는데 그 이유를 영화 보고 알게 됐다. 너무 고맙다’고. 스웨덴 스카우트 리더는 ‘환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잼버리를 개최했다는 것에 놀랐다. 돌아가 내 아이와 다른 대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예술과 사랑은 만국 공통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영화에는 이 대원들과 비슷한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오동필)를 따라다니며 물새를 관찰하던 오승준군이 멸종보호종인 쇠검은머리쑥새의 번식 증거를 찾아내 정부의 새만금 신공항 건설 환경영향평가에 증거로 제출한다. 그레타 툰베리의 나라, 스웨덴의 스카우트들은 어쩌면 그 청년에게서 희망을 읽었는지 모른다. 황윤은 스웨덴 스카우트 리더로부터 선물 받은 스카우트 네커치프를 이날 인터뷰 자리에 매고 나올 정도로 이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

 <수라>는 개봉 7주 만에 다큐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4만명이 관람했다. 두 번 이상 보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에서 상업영화 관람도 많이 하지 않는 현실에서 돋보이는 성적이다.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의 힘이다.

 - 이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이유가 뭘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관객들이 굉장히 많이 우세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고,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나고, 희망을 느껴서 눈물이 난다고 해요. 통영의 60대 남성이 ‘나는 보수주의자다. 경제학을 했고 개발 쪽에서 일했다. 새만금도 잘 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많이 반성하고 성찰했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초등 5학년 어린이는 ‘도요새가 머나먼 여정을 날아가는 것을 보니까 우리도 먼 길과 험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 때 먼 여정을 나아가는 도요새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는데 어린이들이 그런 마음을 갖게 되니 너무 기뻤고 힘을 얻었어요.”

영화 <수라>에 나오는 아기 쇠제비갈매기. 멸종보호종이다. 황윤 감독 제공

영화 <수라>에 나오는 아기 쇠제비갈매기. 멸종보호종이다. 황윤 감독 제공

 - 대학살이라고 했는데, 영화 속에 많은 죽음이 나오죠.
 “새만금 사업은 단순히 환경 파괴가 아니고 국가 폭력,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해요. 갯벌 규모가 광활하고, 중요성도 엄청나요. 세계에 갯벌이 있는 나라가 많지 않아요. 한국 갯벌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이 된 이유죠. 도요새 입장에서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출발해 알래스카, 시베리아까지 가는 1만㎞ 이상 여정에서 한번은 쉬어야 하는데 그곳이 한국 갯벌이에요. 거기를 매립한 거죠. 그랬을 때 이들에게 남는 건 죽음입니다.”

 영화에는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들이 땅속에서 버티다 비가 오자 일제히 나와서 입을 벌렸다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해수가 아니라 민물인 걸 몰랐기 때문이다.

 “뱃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새들을 찍은 다큐 <알바트로스>의 크리스 조던 감독이 저와의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바트로스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조던은 환생하면 알바트로스로 태어나 플라스틱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다음 생에 도요새로 환생해 동료들에게 갯벌을 매립하는 한국으로 가지 말자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새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갖고 있어요. 수라에서 태어난 쇠제비갈매기 아기들은 겨울에 동남아로 갔다가 다음해 다시 수라로 올 겁니다. 그때 만약 수라가 사라져 있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죽음은 인간에게도 미친다. 2006년 조개를 잡던 중 예고 없이 방조제 수문이 열려 들어온 물에 휩쓸린 류기화씨의 죽음은 황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매립 이후 어민 2만여명이 생계를 잃었다고 한다. 영화에는 풀베기 공공근로를 하던 중 바다를 보며 눈물 짓는 나이 지긋한 남성 어민이 나온다. 갯벌 생태의 변화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삶, 문화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하는 일이다. 인류학자 함한희는 저서 <미완의 기록, 새만금사업과 어민들>(2013)에서 “바다를 막아 강물을 흐르지 못하게 하면 강물이 죽고, 강물이 죽으면 갯벌이 죽고, 또 갯벌이 죽으면 조개들이 죽고 그러고 나면 인간이 죽는다”고 했던 어민들 얘기를 기록했다. 황윤은 “이 사업을 수십년간 이어온 정부는 그 어민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고 트라우마 치료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저는 영화에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갯벌, 도요새, 조개, 어민, 그리고 나, 나의 아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갯벌이 사라지면 조개와 갯지렁이가 사라지고 그들이 사라지면 도요새도 굶주려 죽고, 강과 바다를 막으니 물이 썩어가고, 물고기가 죽어가고, 갯벌을 매립하니 뻘이 말라 초미세먼지가 되어 저희 집까지 날아옵니다. 저는 어느 새 목격자에서 피해 당사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아들 도영이가 앉아 있던 황무지는 바로 해창갯벌입니다. 잼버리를 한다고 3~4년 전부터 갯벌을 매립하기 시작했고 황무지가 되어가는 현장에서 아들과 친구들은 물고기를 구조한다고 뛰어다녔어요. 그리고 그날, 매립되는 갯벌에서 아들 도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잼버리 청소년들보다 먼저, 저의 아들이 죽음의 갯벌을 경험한 거죠.”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이 12일 전북 부안 해창갯벌 매립지에 조성된 새만금잼버리 야영지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제민 기자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이 12일 전북 부안 해창갯벌 매립지에 조성된 새만금잼버리 야영지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제민 기자

 이들이 일찌감치 이곳은 야영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고 경고했는데 정부는 왜 듣지 않았을까. 오동필의 말이다. “잼버리를 위해 흙을 3m나 쌓아올렸는데도 허사였어요. 농지로 용도 변경해 매립했기 때문에 평평하게 쌓았고, 비가 오면 지하로 스며들어야 물이 빠집니다. 하지만 물기를 품은 갯벌 위에 흙이 놓여 있기 때문에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고일 수밖에 없는 게 매립지의 특성입니다. 농지 기금을 전용해 이걸 매립한다고 했을 때 ‘굿 아이디어’라고 박수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잔치를 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준설에 이은 매립으로 매년 7000억~8000억원이 녹아 없어져온 곳이 새만금입니다. 그 돈이 다 어디 갔겠어요? 새만금개발청과 농어촌공사 등 공기업들과 건설기업들 주머니로 갔겠지요.” 그는 입만 열면 ‘이권 카르텔’을 잡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새만금 토건 카르텔’을 얼마나 단죄하는지 두고 보겠다고 했다.

 2006년 대법원 판결 후 새만금 간척 반대 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때부터 갯벌 다큐를 찍으려 했던 황윤도 그즈음 일어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2014년 우연한 계기에 돌아온 이곳에서 그는 갯벌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고 놀랐다. 흰발농게가 갯벌 밑에서 언젠가 들어올 바닷물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고, 시민조사단이 그곳을 뜨지 않고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 그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요.
 “‘녹색평론’ 가을호에 쓴 부분을 읽어드릴게요. ‘막바지 촬영을 하던 2022년 2월 수라갯벌 상공을 잿빛개구리매 암컷이 차디찬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날개를 쫙 펴고 유영하듯 날고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강인함, 유연함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매립토를 실어나르는 덤프트럭 옆에서 바짝 긴장한 채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고 알을 품던 검은머리갈매기 엄마의 용감함, 눈을 꼭 감은 채 엄마를 기다리던 쇠제비갈매기 새끼들의 위태로움과 사랑스러움, 물가로 아기들을 데리고 내려가 갯지렁이 잡는 법을 가르쳐주던 검은머리물떼새 부모의 성실함과 의젓함…. 내가 힘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수라에서 생명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살아 있음을 느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고 겸손해졌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혼자서 수라에 갔을 때, 내가 수라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수라가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지탱해준다고 느껴졌다.’ 조사단분들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부가 추진하는 새만금 신공항을 막는 겁니다. 새만금에서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에서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곳엔 40~50종의 법정 보호종이 살아요. 그들이 사라지든 말든 그냥 공항을 지을 거라면 왜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정했나요. 유네스코가 한국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할 때 서천·고창·신안·순천만 갯벌 외에 다른 갯벌에 대해서도 보호 조치를 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어요. 인천 같은 지자체가 그 지역 갯벌을 추가 등재하려 하겠다고 나섰어요. 수라갯벌도 보호 가치가 뛰어나요. 정부는 수라갯벌이 이미 육화돼 갯벌이 아니라고 하는데, 한번 와보고 얘기하라는 거예요.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잿빛개구리매, 흰꼬리수리들을 보라는 거예요. 수라갯벌이라는 배후습지가 사라지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서천갯벌도 연동돼 영향을 받을 겁니다.”

 - 새만금 30년 개발사를 보면 전북 지역의 개발 소외감이 가장 큰 동력이었는데요. 전북 도민들로서는 대원들이 야영 대회를 다 마치지 못하고 전국 각지로 흩어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박탈감도 느꼈을 것 같아요.
 “이번 일이 굉장히 큰 성찰의 시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갯벌을 그대로 지켰더라면 잼버리 대원들이 와서 전북을 다시 보지 않았을까요. 전북에 좋은 자연이 매우 많아요. 그 자연을 느끼고, 특히 갯벌에 와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느끼고 갔더라면 그 젊은이들이 모두 전북의 홍보대사가 됐을 거예요. 최소한 정부가 그들에게 잼버리 대회가 열린 장소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비극이 벌어지진 않았겠죠. 전북도는 이번 일에 박탈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정말 뼈저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못 느낀다면 희망이 없겠죠.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이었나,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고 뭔가 큰 거를 얻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저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본국으로 돌아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도 계속 이 영화를 보여줄 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 영화에서 ‘좀 더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 좀 더 아픔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에 주목하는데요. 도시적 감수성에 익숙한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도 매일 야생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도시적 감수성도 좋아해요. 하지만 실은 우리가 야생을 진짜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 한번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면 헤어날 수 없어요. 그중 한 사람이 영화의 주인공 오동필씨이고요. 2005년쯤, 지금은 사라진 옥구염전에서 도요새 10만마리의 군무를 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해요.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일까.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거라고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에요.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기 때문에 그게 사라지는 게 슬프고, 고통스럽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고, 우리 아이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매혹의 순간을 전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 거고요. 어쩌면 그게 전해져서 관객들이 나서서 영화를 전파해주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도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도시는 도시대로 있되 우리가 (자연을) 다 파괴하지는 말자는 거죠. 남겨둘 건 감겨두자는 겁니다. 다 사라진 땅에서 우리가 외로워서 어떻게 살 거예요?”

 황윤은 간척사업을 “모든 사람이 향유해온 갯벌이라는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하에 토건업자 배를 불리고 그 와중에 뭇 생명이 고통받는 과정이었다. 이를 고발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더 컸던 것은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애도하는 마음이었다. 죽은 도요새를 가만히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파괴되고 병들어 가는 지구에서 살아갈 아이들에 대한 연민의 다른 표현이다. “인류가 처한 종말적 현실을 직시하고 깊이 애도하는 것, 그렇게 의식의 깊은 우물 저 아래 방치돼 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크리스 조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잼버리 대원들이 떠난 그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수라는 그 거울이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죽음의 땅이 아닌 산 갯벌 봤다면…얼마나 멋진 잼버리가 됐을까”


“수라갯벌 보호가치 있고 경제 타당성 낮은데 공항 짓는 게 맞나”


시민단체,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와 더불어 방조제 해수 유통 확대 요구

정부는 수라갯벌이 이미 육화(陸化)돼 보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며 그 위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신공항 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 이 공항은 2029년 개항을 목표로 9359억원을 투입하는 국책사업이다. 정부는 현재 있는 군산공항 서쪽으로 1.35㎞ 떨어진 곳에 2.5㎞ 길이 활주로를 가진 민간공항으로 짓는다고 밝혔다.

지난 20년 동안 매달 수라갯벌을 방문해 모니터링을 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보호 가치가 없다는 정부의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흰발농게 등 40~50종에 달하는 법정 보호종의 서식 사실을 입증할 증거들을 수집해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도 제출했다.

조류 충돌 위험성도 높다. 영화 <수라>에는 1만5000마리의 가마우지 떼와 공군기가 충돌하는 장면이 담기기도 했다. 대부분 지방 공항들이 그렇듯 경제적 타당성도 낮다. 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새만금 잼버리 대회 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탄소 등 온실가스를 흡수·저장하는 갯벌 생태계를 없애 탄소배출원인 공항을 더 지으려는 계획이 시대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또 다른 의문은 신공항이 결국 미군 활주로를 하나 더 늘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게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신공항은 현 군산공항(미군 부대 내에 있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어지는데, 정부는 신공항과 구공항 사이 부지 23만평을 미군에 공여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부지에 관제탑과 유도로가 들어서는데, 관리 주체는 미군이다. 신공항 관제를 미군이 맡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에 없던 23만평 추가 공여 사실을 본안에 기재하며 관련 내용을 모두 ‘비공개’ 처리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만금 신공항은 민간공항이 맞다. 다만 미군이 관련돼 있는 공항이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서 국방부가 해당 부분을 비공개하도록 요청했다”며 “신공항을 평시에 미군이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신공항 백지화와 더불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방조제 해수 유통 확대다. 정부는 2010년 이후 하루 1회 이뤄지던 해수 유통을 2020년 말 2회로 늘렸다. 여전히 부족하나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죽어가던 갯벌 생물이 살아날 기미를 보인 것이다. 정부가 20년간 4조원을 들이고도 썩는 걸 막지 못했던 새만금 담수호 수질은 바닷물과 강물이 자유롭게 만나야 비로소 개선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이를 ‘염분 성층화’로 설명했다. 호수 아래는 염분이 높은 물이 있고 위에는 담수가 층을 이루는데, 방조제 때문에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아 아랫물의 용존산소가 줄어들며 저서생물이 죽고, 물이 썩는다고 했다. 해수 유통을 늘리면 수질이 나아지고 인접한 갯벌, 염습지 생태계도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손제민 논설위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