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뿌리고 줄 세우고… 한나라 전대는 錢大?

2010.07.01 18:25 입력 2010.07.02 00:19 수정

후보 난립속 구태 재연

해외 골프 등 곳곳 감지… ‘자유투표 보장’ 요구도

한나라당 수도권 지역의 ㄱ의원은 최근 전당대회에 출마한 ㄴ후보로부터 식사 한 번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ㄱ의원은 평소 이 후보와 친분이 있었지만 전대에 도와달라는 부탁을 할 것 같아 해외 일정 등을 핑계로 약속을 미뤘다. ㄱ의원은 그러나 외부 행사에 참석했다가 ㄴ후보를 만났고, 그로부터 자신이 지도부에 들어가면 정조위원장으로 추천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ㄱ의원은 “말은 고맙지만 자기 뒤에 줄서라는 얘긴가 싶더라”며 “계파도 없는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할 정도니 다른 의원들한테는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정론관에서 1일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오른쪽)이 전당대회 선거에서 ‘의원 줄세우기’ 등의 배격을 촉구하는 중진의원들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국회 정론관에서 1일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오른쪽)이 전당대회 선거에서 ‘의원 줄세우기’ 등의 배격을 촉구하는 중진의원들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한나라당의 당대표 등 새 지도부를 뽑는 7·14 전당대회를 앞두고 의원들 ‘줄세우기’와 ‘돈 선거’ 관행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 전대의 경우 계파 수장들이 불출마하고 ‘2진급’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예전처럼 유력 후보에게 줄을 대고 계파 싸움으로 변질되던 양상은 다소 옅어진 분위기다. 하지만 13명의 후보들이 ‘각개전투’ 양상을 벌이면서 ‘표’가 되는 대의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한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졌다는 지적이다.

한 당직자는 “최근 대의원이 새로 구성되면서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을 잡는 게 더 중요해졌다”며 “모 후보 측은 전대 전날까지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 식사 약속 일정이 꽉 찼다더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구당 한 곳당 대의원이 16명에서 28명 정도 되는데, 1인2표제이기 때문에 한 표는 소신껏 찍더라도 나머지 한 표는 당협위원장 말이 먹힐 여지가 있다”며 “후보들이 필사적으로 당협위원장들을 잡으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이번 전대에서 대의원 투표 70%와 여론조사 30%를 반영해 지도부를 선출키로 했다. 자연히 9000여명의 대의원 표를 누가 잡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되고 있다. 자연히 대의원 숫자가 많고 원로급 인사들이 많은 당 중앙위원회를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모 후보 측 관계자는 “중앙위 명단을 보고 선거캠프 특보 명함을 미리 만들어놓은 뒤 기회가 생기면 ‘특보로 모시고 싶다’며 명함을 건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예전처럼 공천권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자꾸 대의원 표 모아달라고 부탁을 하면 초·재선 의원이나 당협위원장들은 압박으로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뿌려지는 돈도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전국 243개 당원협의회 등 조직을 관리하고 대의원들을 ‘접대’하는 데에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후보자 등록시 공식적으로 내야 하는 기탁금만도 8000만원이다. 한 중진의원은 “몇년 전 전대 출마 때 보니 후보마다 돈 봉투를 엄청나게 돌리고, 세게 붙는 사람은 선거비용으로 10억원 이상 쓰더라”며 “말 그대로 ‘전(錢)대’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상대로 2~3개월 전부터 해외골프 접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전대를 앞두고 곳곳에서 ‘구태’가 감지되자,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1일 당규에 따라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들이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금품·향응 등 기부행위나 당직 임명 및 공천 약속 등도 일절 하지 못하도록 했다.

홍사덕·김형오·권영세 의원 등 한나라당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이날 “대의원들의 자유투표가 보장돼야 하며, 국회의원 줄세우기와 당협위원장들의 지시가 배제된 진정한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불법 선거운동 사례가 적발되더라도 구두경고 등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줄세우기와 돈 선거 관행에 얼마나 제동이 걸릴지는 미지수다.

당 관계자는 “당 클린경선감시단이 있긴 하지만 동료 의원의 불법행위를 검찰 고발 등 강력하게 조치할 수 있겠느냐”며 “전대 관리를 중앙선관위에 위탁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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