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도 갈라놓은 ‘자유민주주의’

2011.09.23 21:41 입력 2011.09.23 23:06 수정
장은교 기자

교과위 이틀째 파행

새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고시로 촉발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합세하고,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는 이 문제로 이틀째 파행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57)는 23일 “헌법에 나와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넣자고 하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독일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정당을 벌써 두 번이나 해산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서울 여의도 서울시당 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시당 조찬모임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나라의 근본가치인데 그것을 교과서에 넣자고 하니까 못 넣겠다고 일부 학자들이 사퇴하고, 야당 의원들은 동조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야당 교과위원들이 “국감을 색깔론으로 덧씌운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한 데 대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오른쪽)과 서상기 의원이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서 지난 19일 박 의원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은 북한에 가라”는 발언으로 국감이 파행 중인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오른쪽)과 서상기 의원이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서 지난 19일 박 의원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은 북한에 가라”는 발언으로 국감이 파행 중인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과 글을 메모해 자신의 컴퓨터 위에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과 글을 메모해 자신의 컴퓨터 위에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64)는 “한나라당이 시대착오적 매카시즘 망령에 사로잡혀 국정감사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민주당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존중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조용환 헌법재판관에게 색깔론을 뒤집어씌우고 군 장병에게 ‘민주화 운동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엉터리 교육을 시키는 게 헌법을 수호하는 것인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에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교과부가 새 역사교과서에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역사교육과정 추진위원 20명 중 9명이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사퇴하면서 촉발됐다. 갈등은 지난 19일 열린 교과위 국감으로 옮아붙었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42)이 정부의 뒤늦은 표현 변경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지적하자,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51)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을 하라”고 말했다. 이 ‘색깔’ 발언은 곧바로 파행으로 이어졌다.

23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도 ‘자유민주주의’ 논쟁만 거듭했다. 야당은 박 의원의 사과와 속기록 삭제를 요구했다. 박 의원은 “야당 의원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야당 의원들 중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이 있느냐”고 말한 뒤 “제 발언을 왜곡한 민주당은 사과하라”고 요구해 분위기는 더욱 악화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45)과 김상희 의원(57) 등은 “사과가 아니라 협박이고 훈계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으나 여당 측은 “곽노현 교육감 감사를 피하기 위한 의도적 파행”이라며 맞섰다.

여야는 오후 한때 사과문구 조율에 들어가 합의하는 듯했으나 표현과 진정성을 두고 다투고, 막말과 고성까지 오가다 오후 9시35분쯤 변재일 위원장(63)이 ‘시교육청 국감의 유예’를 결정했다. 오전 11시30분 개의된 회의는 70분 만인 낮 12시40분 정회된 뒤 끝내 유예된 것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천박하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시비하는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박상병 박사는 “민주주의 논란이 이념 논쟁이나 정쟁으로 흐르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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