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전대 때 청와대·이상득·친이계가 박희태 전폭 지원

2012.01.09 21:55

당시 정몽준 “금품 살포 물증 있다” 문제 제기

박희태 국회의장이 대표로 선출됐던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선 청와대와 친이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두드러졌다. 그 조직을 업은 박희태 후보는 정몽준 후보의 바람을 눌렀다. 이상득 의원(77) 등 친이 실세들이 선거캠프에 대거 가세했다. 당에선 박희태 당선을 이명박 대통령의 친정체제 완성으로 해석했다.

■ 전면에 나선 친이 조직

당시 선거에서 친이계들은 박희태 후보를 발벗고 도왔다. 당·청 가교역할의 적임자라는 평가, 2008년 4월 총선 때 공천에서 탈락한 ‘원외 친이’인 박 후보에 대한 배려 움직임이 섞이면서 여권 주류에서 조직적으로 밀었다. 박희태 캠프를 두고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의 ‘축소판’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다. 이 대통령을 만든 원로모임에 있던 박 후보를 중심으로 친이계 조직이 집중된 것이다.

캠프에선 친이재오계 안경률 의원(64) 등이 좌장 역할을 맡았고, 구설에 오른 김효재 의원(60·청와대 정무수석)은 상황실장 역할을 했다. 차명진·임해규·진수희 의원 등 친이계 재선, 백성운·정태근 등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도 캠프에 참여했다. 당내에선 이상득 의원이 배후에서 친이계를 결집해 사실상 선거전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의 최고위원 선거운동 참여 금지를 명문화한 당헌·당규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선거 초반 ‘대세론’으로 순항하던 박희태 후보는 선거 중반 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 우위를 바탕으로 ‘바람’을 일으키면서 잠시 주춤했다. 청와대와 친이계의 집중지원은 이때 도드라졌다. 여론조사에서 뒤진 박 후보는 70%가 반영되는 현장 대의원 투표에 승부를 걸어야 했던 만큼 당시 최대계파인 친이계는 조직동원에 주력했다.

고승덕 의원(55)의 증언대로 박 후보 측의 금품살포가 이뤄졌다면 시기는 이때쯤으로 추정된다. 실제 정몽준 후보는 전당대회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자리를 약속하고 금품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데 그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물증도 갖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2008 전대 때 청와대·이상득·친이계가 박희태 전폭 지원

■ 박 후보 당선 직후 친이계 당 접수

박희태 체제의 한나라당은 빠르게 ‘이명박당’으로 바뀌었다. 신임 사무총장으로 안경률 의원, 대변인으로 차명진 의원(53)이 임명되면서 친이계의 당 접수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홍준표 원내대표(58)와 임태희 정책위의장(56) 등을 포함할 경우 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대변인까지 주요 당직을 모두 친이계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대표 비서실장도 김효재 의원이 맡았다.

박희태 신임대표는 취임 연설에서 “새로운 당·청관계를 설립할 때”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혁을 한다고 당·청관계를 분리해 따로 놀아 결국 국정이 파탄났다. 선례를 점검해 국민들에게 어떤 것이 유익하냐는 기준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몸으로 청와대를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친이계 의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심재철, 공성진, 차명진, 이윤성 등 친이계 의원 등은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를 발족했다. 40여명에서 시작한 이 모임은 한때 회원수 70명을 넘기며 당내 최대 계파모임으로 활동해왔으나 지난 연말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해산됐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비대위원들이 9일 국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전당대회 돈봉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비대위원들이 9일 국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전당대회 돈봉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발빼는 캠프 인사들

2008년 전대에서 조직 선거와 돈봉투 파문이 터진 지금 박 후보 선거 캠프부터 검찰이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돈봉투 사건이 터지면서 캠프에 참여했다고 거론된 의원들은 대체로 말을 아꼈다. 일부는 “이름만 걸쳐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당에서는 황영철 대변인이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직후 “책임이 있다고 보여지는 분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달라”고 밝히며 압박에 나선 상태다.

친이계 재선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했다”고 했다. 경선 당시 그는 캠프에서 특정역할을 수행했으며, 박희태 대표 당선 뒤 당직을 맡기도 했다.

박희태 캠프를 총괄했던 것으로 알려진 한 영남 중진 의원도 “(특정 당직을 맡았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얼치기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그런 데 참여하지도 않겠거니와 특별히 본부를 만들고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면서 “돈봉투도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의원들이 많이 있었고, 기분좋은 상태에서 도와드리고자 했던 것”이라고만 했다.

당시 박희태 캠프에 참여했던 것으로 거론된 친이재오계 의원은 “왜 자꾸 친이계 모두를 싸잡느냐”면서 “이 장관은 2008년 5월에 미국으로 갔다”고 했다. 그는 “이상득 의원이 박희태 대표를 밀자는 것 자체를 우리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박희태 카드를 민 것은 이상득 의원이지, 이재오 의원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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