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7일 차기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당초 계획된 6월 말~7월 초보다 한 달 이상 늦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내에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출마할 시간을 벌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황 위원장은 이날 SBS·KBS라디오에 출연해 “당헌·당규상 전당대회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40일 정도라서 6월 말이면 5월20일부터는 착수해야 한다”며 “원내대표 선출도 (9일로) 늦어졌고 물리적으로 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룰(경선 규칙)을 확정하고 후보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한 달 이상은 늦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총선 참패 후 당선인 총회와 중진 연석회의 등에서 관리형 비대위를 꾸려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중지를 모아 ‘황우여 비대위’를 띄웠는데, 막상 비대위원장 취임 후엔 전당대회 시기를 늦춘 것이다. 9월에 정기국회가 시작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전인 8월에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재명 대표의 연임이 유력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도 8월로 예정돼 있다.
당내에선 총선 참패한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한 전 위원장 출마에 유리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전당대회가 빠르면 한 전 위원장이 나서기 아직 이르다고 할텐데, 늦어지면 출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통화에서 “한 전 위원장이 총선 때 공천을 줬던 사람들을 만나고 세력화할 시간을 벌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 일정대로면 6월 말에 나오는 총선 백서의 책임론에 한 전 위원장이 직격탄을 맞았을텐데 이제 전당대회까지 한 달 이상 시차를 두게 된 측면도 있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원내대표를 뽑더라도 원 구성 협상 등에서 국회 주도권을 민주당에 뺏기고 용산에 휘둘리는 등 당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그나마 (민주당과 용산에) 맞설 가능성을 보였던 한동훈 같은 사람을 찾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평 변호사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위원장이 당에 전당대회 연기를 요청했다고 말하고, 한 전 위원장이 “그런 적 없다”고 반박한 일이 있었는데, 이는 전대 연기가 한 전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인식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존에 출마를 준비하던 당권주자들 사이에선 반발 기류가 읽힌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공정한 절차를 거쳐 민심에 맞는 지도부를 만드는 전당대회를 가급적 빠르게 추진한다는 게 현 비대위의 목적 아니었나”라며 “정기국회 한달 전엔 지도부가 꾸려져 있어야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당권주자는 이날 통화에서 “준비에 시간이 걸리면 어쩔 수 없는데, 여당이 비상지도체제로 오래 가는 건 좋지 않으니 빨리 준비해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다른 당권주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관리형 비대위를 하기로 했는데 전당대회를 늦게 열면 월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장은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한 듯 “당무라는 게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일할 수는 없다”고 한 전 위원장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반대로 친윤석열계가 전당대회를 주도할 기회를 얻었다는 시각도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친윤계 중심인 원내 당선인들이 당의 주도권을 쥐면서 전당대회를 이끌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2016년 총선 패배 후 당정관계에 대한 반성이 많았지만, 8월에 열린 전당대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최측근인 이정현 대표가 당선된 전례도 거론된다.
전당대회 연기가 비상권력을 잡은 황 위원장의 이해관계와 맞다는 말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권력이라는 게 두 달 동안 잠깐 하고 내려놓는 게 안된다. 황 위원장이 정치 고수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 8단) 아닌가”라며 “황 위원장도 최대한 본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거라서 8월 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