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통일 대박” “개성공단 중단”…국내 정치공세용 ‘카드’ 악용

2016.12.22 22:32 입력 2016.12.22 22:33 수정

대북정책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주장했지만 구체적 방법론 결여

신뢰 구축도 없이 북 변화 요구…국민 환심사기 치중

‘북 붕괴론’에 지나친 경도…하향식 단발성 대책 남발

정부가 4차 북한 핵실험으로 경기 파주 도라산전망대 관광을 중단한 지 48일 만인 지난 2월23일 재개했다. 지난 2월10일 가동 중단된 개성공단의 전경이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가 4차 북한 핵실험으로 경기 파주 도라산전망대 관광을 중단한 지 48일 만인 지난 2월23일 재개했다. 지난 2월10일 가동 중단된 개성공단의 전경이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내세운 대외정책 기조는 ‘신뢰외교(trustpolitik)’였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지속가능한 평화협력 구축을 목표로 삼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시아 평화협력 구상’도 여기서 파생된 것이었다. 보수정권이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북한 김정은 체제 출범과 맞물려 남북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추진과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인도적 문제 해결에 우선적 관심을 표명하고 상시적인 남북 당국 간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기존 남북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또 남북 호혜적 교류·협력 확대와 함께 개성공단을 국제화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 이후 실제 정부가 보여준 대북정책은 완전히 달랐다. 훌륭한 정책을 이행할 수 있는 실행 방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내용은 훌륭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 ‘국내정치’용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실행의 첫 번째 단계는 남북 간 신뢰 구축이었다. 정부의 대북정책 중점 추진과제도 모두 ‘신뢰가 형성되고 난 뒤’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탄핵! 박근혜 정책] (10)“통일 대박” “개성공단 중단”…국내 정치공세용 ‘카드’ 악용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두고 ‘신뢰를 보여줘 프로세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전략이 이처럼 그럴싸하면서도 알맹이가 없는 이유는 북한을 상대하기 위한 대북정책이 아니라 국민들 환심을 사기 위한 대북정책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박근혜 정부가 염두에 둔 것은 북한이 아니라 국내정치였다. 대북원칙은 국내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북한과 대화·협력을 추진한다고 말하면서 도발적인 언사로 북한을 자극했고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을 때는 ‘원칙’을 강조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 정권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문하면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와 2015년 지뢰도발 사건에 이은 남북 합의로 국면 전환 전기를 잡았을 때 기회를 살리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안보 관련 관료를 지낸 한 전문가는 “북한 문제에서 국내적 정서를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부에서나 대북정책과 국내정치는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유독 그런 현상이 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애국세력과 종북세력으로 나누고 이념적 공세로 국내정치 상황을 돌파하려 한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 대북 철학·전략·시스템의 부재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이 실패한 또 다른 원인은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과 전략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른 ‘북한 붕괴론’에 정부가 지나치게 경도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양무진 교수는 “올바른 대북정책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북한을 대화·교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했다”며 “이 같은 인식 때문에 북한 문제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단발성 정책을 남발하고 북한 붕괴론에 의지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고 남북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한 시점에 ‘통일 대박’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북한 붕괴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정부의 통일·안보 관련 부처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최고 결정권자의 결정만을 따랐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정책 결정이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이뤄져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의 참모들이 여론을 수렴하고 전략을 검토해 정책을 만든 뒤 대통령 결재를 받아 시행하는 구조가 아니라, 최고위선에서 결정된 내용을 하달받기만 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NSC는 정부 결정을 추인하기 위한 기구였으며 통일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선전·홍보하는 부처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부가 대책 없는 대북 강경책과 북한 체제 붕괴에 대한 희망적 사고에 매달리는 동안 김정은 체제는 안정을 찾았고 북한의 핵능력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됐다.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대북 전문가들은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든 차기 정부는 기존 정책의 실패를 바로잡는 차원의 대북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압박을 통한 북한 정권 붕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교류·협력을 통한 변화를 추구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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