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민의 선택

“누가 돼도 야권”···광주 민심은 ‘더 좋은 정권 교체’ 저울질

2017.05.01 18:38

5·9 조기 대선을 앞둔 광주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를 놓고 ‘더 좋은 정권교체’ 적임자를 고르는 중이었다. 초유의 ‘야·야 대결’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야권 후보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대선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광주 표심을 상징해온 ‘전략적 선택’도 내용이 달라졌다. 수구·보수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진보·개혁진영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났다. 적이 없어진 대선이란 의미다. 안정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문 후보에게 쏠림 현상도 감지됐지만 선거 막판까지 문·안 후보를 놓고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광주 민심은 대선 너머까지 향하고 있었다. 야권의 고향, 야권의 심장부라며 더 이상 표심만 구애하면 안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가 운명’의 비전을 그릴 줄 아는 후보에게 마음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문 후보의 ‘비영남 총리’, 안 후보의 ‘호남 대망론’을 “지역이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며 시큰둥해 하는 까닭이다. 광주도 야권도 이번 대선은 새로운 정치를 향해 가는 시험대였다.

광주 시민들이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광장에서 한 대선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시민들이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광장에서 한 대선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안철수라는 선택지

광주에서 지난달 30일과 1일 만난 시민들은 문 후보와 안 후보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세대별로 확연히 갈렸다.

젊은층과 60대 미만의 중·장년층은 ‘적폐청산 적임자’라는 이유로 문 후보를 지지했다.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모씨(50)는 “문 후보가 다른 사람보다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외친 촛불집회에 수차례 참가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씨는 “촛불이 오랫동안 타오른 것은 아이들을 위한 미래, 변화를 위한 것”이라며 “문 후보가 이런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회사원 나현욱씨(35)는 “안 후보는 소신과 추진력이 없어 보인다. 박지원 대표 같은 옛날 정치인들과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반면 안 후보는 60대 이상 노년층이 주된 지지세력이었다. 포용력과 미래지향적 이미지에 주목했다. 택시기사 김종배씨(64)는 “이제는 여야, 호남·영남을 가를 필요 없이 전부 아울러야 한다. 안 후보는 화해·용서·미래를 얘기한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그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똑똑한 안 후보가 잘할 것 같다”며 “다른 후보들은 별다른 정책 없이 네거티브만 한다”고 했다. 김씨는 민주당 경선 때 한 민주당 측 인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의당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욕설이 담긴 ‘댓글 폭탄’을 맞은 경험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게 패권주의가 아니고 뭔가. 이래서 무슨 통합을 하나. 친노·친문·친박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구에 사는 신모씨(69)는 “호남 홀대론과 말 바꾸기 때문에 문 후보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서구 금남로에서 만난 회사원 임권진씨(46)는 평소 정의당에 호감을 갖고 있지만 문·안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58)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문·안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임씨는 문 후보에 대해 “두루뭉술하고 기존 정치세력에 휘둘리는 모습”이라고 평했다. 안 후보는 “소신이 있다고 하지만 세력이 적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임씨는 “심 후보가 득표율 10%를 넘으면 정의당이 입지가 좀 더 커질 수 있어 갈등 중”이라고 했다.

과거 대선 때보다 영향력이 커진 TV토론을 시청한 뒤 고민에 빠진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안 후보를 지지했던 김은희씨(49)는 “정책 부문에서 미래 주도적인 얘기를 많이 할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성 발언이 주를 이뤄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광산구 송정시장 부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대호씨(63)는 “처음에는 안 후보를 지지했으나 토론회를 보니까 미흡한 점이 많고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소신 투표와 전략적 투표의 간극

문·안 후보 중 누가 당선돼도 야권이 정권을 잡는 만큼 전략적 선택보다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취업준비생 정하연씨(35)는 “두 후보 모두 야당이기 때문에 기존처럼 몰표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더 오르면 문 후보 쪽으로 표가 쏠릴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실제 ‘문재인 1강 구도’가 굳어지고 안 후보가 홍 후보에게 쫓기는 양상을 보이자 전략적 선택을 고심하는 이들도 보였다. 안 후보 지지자 이상명씨(72·서구)는 “표가 분산됐다가 어부지리로 보수가 당선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될 사람’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며 “여론은 몰아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높은 득표율로 인해 집권해서도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심 후보를 주목하는 이들도 보였다. 하지만 ‘사표 심리’ 때문에 ‘심상정 지지’로 연결짓는 데는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문 후보 지지자인 학원강사 소지숙씨(47)는 “심 후보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문 후보가 이런 진취적인 모습을 닮아 갔으면 한다”고 했다.

홍 후보에 대해서는 “사퇴해야 한다” “나라를 이꼴로 만든 사람이 왜 나왔나” 등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두고는 “토론회는 잘했다” “보수가 구태에서 벗어나 바른정당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딱히 와닿지 않는다” 등 평가가 엇갈렸다.

■정권교체 이후

집권 이후 문 후보의 통합정부와 안 후보의 개혁공동정부 구상을 놓고 시민들은 한쪽 편을 들기보다 장단점을 두루 살폈다. 서구에 사는 이씨는 “문 후보처럼 자기 사람들 중심으로 일을 하면 힘을 모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안 후보에 대해선 “지역주의 타파 차원에서 연립정부 취지는 좋지만,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개혁을 추동할 힘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학생 채모씨(26)는 “문 후보의 구상은 집권 초반 적폐청산을 위해서 옳다고 보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방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안 후보의 구상은 너무 이상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가 김종인 전 대표를 개혁공동정부추진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반전 카드’를 들고나왔지만 광주시민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양동시장 상인 나미화씨(52)는 “보수표를 얻기 위한 꼼수”라고 잘라 말했다. 안 후보를 지지하는 상인 한명훈씨(69)도 “이미 늦었다. 지지율이 떨어질 때 진작 나서야 했는데…”라고 했다.

차기 정부에서 호남 출신 총리가 등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에 대해 시민들은 “지역은 중요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광산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경만씨(45)는 “과거 호남이 핍박을 받았으나 이제 지역을 내세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분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취업준비생 유모씨(26)도 “호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총리에 앉히는 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지역보다 능력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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