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선언 파기’ 꺼낸 집권여당 ‘대북 강경론’···“북한과 똑같은 나라 되자는 것”

2022.10.12 17:02 입력 2022.10.12 17:23 수정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북한 핵무기 고도화에 맞서 제안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는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대북 강경론’을 상징한다. 남북 ‘9·19 군사합의’ 파기와 남한 내 전술핵 재배치 주장과 맞닿아있다.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는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근거를 스스로 허물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와 미국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 위원장이 “북한에 의해 휴지조각이 됐다”며 파기를 주장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1991년 채택된 남북 간 최초의 핵 관련 합의문이다.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냉전이 해체되던 상황에서 북한의 핵개발 시도를 저지하고자 만들어졌다. 체제 안전에 위협이 되는 미국 전술핵을 남한에서 철수시켜야 한다는 북한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비핵화 방안을 6개 조문에 명시했다. ‘핵무기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군비통제와 관련한 남북 간 최초의 구체적 합의라는 평가를 받지만, 북한이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핵개발에 돌입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그러나 유엔 등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결의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인 정 위원장이 30년 된 비핵화 선언 파기를 주장하는 배경엔 최근 북한 핵무기가 남한을 직접 겨냥할 정도로 고도화됐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올해 초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4년 만에 파기한 북한은 지난달 핵무력 법제화로 핵 선제공격 방침을 시사했고,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9일까지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운용훈련을 실시했다고 처음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 주장이 나오는 등 여권을 중심으로 대북 강경론이 분출하는 양상이다.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단하는 내용으로 2018년 채택된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북한 전술핵 실전배치에 맞서 남한에도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출근길에서 전술핵 재배치 관련 질문에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들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밝히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NPT 체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정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 주장이 “선을 넘었다” “매우 섣부른 얘기”라고 비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며 “이를 파기하면 북한에 핵개발 고도화 빌미만 줄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도 통화에서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위반했다고 해서 우리도 안 지키면 북한과 똑같은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술핵 도입 논의와 맞물려 한국의 비핵화 의지가 의심받게 되고, 일본·대만 등 주변국들의 도미노식 핵보유 움직임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긴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에 확장억제력을 제공하며 NPT 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는 우리도 핵을 가지겠다는 선언이자 핵전쟁을 각오하겠다는 신호”라며 “미국이 한국 정부가 막나간다고 생각하며 한·미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북한 핵문제를 단순한 ‘강 대 강’ 대결 구도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 교수는 “북한 핵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어떠한 접근이 가장 효과적일지 그 어느 때보다 냉철히 접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강 대 강 대결 구도로 전개되는 상황을 최대한 막으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쪽으로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나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를 다루는 기존의 접근법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북핵 위협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고도화됐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까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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