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입양…‘제2 성덕 바우만’ 장 필립의 소망

2003.01.02 18:09

“수학 교사가 돼 프랑스뿐 아니라 모국의 학생을 가르치는 게 소망입니다”

1979년 양띠해에 태어나 두살 때 먼 해외 입양길에 오른 아기가 어느덧 24세의 청년이 돼 실낱같은 희망을 안은 채 모국을 찾았다. 누구나 희망으로 맞이한 새해지만 그에게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망감으로 다가왔다.

장 필립 에르만(Jean Philipe Herrmann·24·한국명 백준기)은 지난달 27일 프랑스로 입양된지 22년 만에 친부모를 찾기 위해 1주일 예정으로 한국에 왔다. 그의 한국행은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르는 친부모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국행의 또 다른 배경은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

그가 림프성 백혈병을 앓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1996년. 평소 얼굴이 자주 하얘지고 조그만 일에도 피로를 느끼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림프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학업을 중단한 채 1년간 격리 병동에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질 정도로 힘든 치료를 받았다.

직업이 모두 의사인 프랑스인 양부모의 정성과 ‘살아야겠다’는 의지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주치의는 2차 발병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며 골수이식을 받지 않으면 2001년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양부모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2년이 넘도록 살아 있지만 골수이식을 받지 않는 한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그릇마냥 위태로운 상태다.

마침내 그는 지난해 말 양부모와 함께 마지막 희망을 안고 한국행에 나섰다. 유전자형이 일치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친형제·자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한가닥 희망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에게는 친형제·자매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인으로 기혼이던 친아버지와 다방 종업원이던 미혼의 친어머니는 79년 부산에서 그를 낳고 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설사 친부모를 만나 어느 한쪽의 형제·자매로부터 골수를 제공받더라도 유전자가 같을 확률은 전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2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를 절망에 빠트렸다.

그러나 장 필립은 친부모를 만나고 싶은 소망은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비록 나의 삶을 이어줄 수는 없지만 나에게 생명을 준 엄마, 아빠 앞에서라도 목놓아 울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와 양부모는 마지막으로 2일 성덕 바우만에게 골수를 기증해 새 삶을 선물한 ‘제2의 서한국’,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한국인 기증자를 찾기 위해 한국골수은행협회를 찾았다. 장 필립을 위해 유전자검색에 들어간 이 협회 나정화 주임은 “골수 유전자 일치 확률이 매우 낮은 데다 설사 일치하더라도 막상 기증을 앞두고는 의사를 뒤짚는 경우가 많아 힘든 실정”이라며 “가능한 한 유전자 일치자를 많이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의 해외 입양을 주선한 홀트아동복지회측은 장 필립을 살릴 수 있는 골수 기증자 확보를 위해 캠페인에 나서기로 했다. 입양 전 한국에서 잠깐 장 필립을 돌보다 해외로 보낸 한국인 양부모와 그 자녀들도 골수검사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는 친부모에 의해 태어난지 3개월 만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한 국내의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양부모에 의해 백준기라는 한국 이름이 비로소 생겼으나 이미 4남매를 키우던 양부모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이듬해 홀트의 알선으로 프랑스로 보내졌다. 장 필립이란 이름을 얻은 그는 전국 아동체스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뽐내기도 했다.

특히 수학에 재능을 보인 그는 치료 때문에 고교를 자퇴한 뒤에도 병상에서 혼자 공부, 98년 6월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과한 데 이어 프랑스의 낭시대학 대학원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올 3월 중등교사 자격시험을 앞둔 그가 97년 성덕 바우만에게 골수를 기증한 서한국씨처럼, 같은 유전자를 가진 골수기증자를 만나 새삶을 살면서 그 자신의 꿈인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오게 할 수 없을까. 연락처 홀트아동복지회 프랑스담당 박소현 (02)332-7501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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