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제사회 일원이 된다는 것

2003.02.02 18:40

이종욱 박사의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당선은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쾌거임에 틀림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4강 진출에 이어 이번 이박사의 당선은 21세기 세계 속의 한국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재확인해주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과연 우리 사회 기층문화의 성숙에 기반하고 있는지, 아니면 돌출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차치하고라도, 국제적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질적 고양과 성숙을 얼마나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변화하고 있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긍정적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더 본질적으로 세계시민으로서의 인류사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좀더 솔직하게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에 맞추어 제기되고 있는 국가적 의제 중에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발전이라는 항목이 있지만, 이는 다분히 경제적 국가경쟁력에 치중한 것이지, 국제사회에서의 도덕적 리더십의 측면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리더십을 가지려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인간적 모욕이나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는 일이다.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우리 곁에서 함께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냉엄한 평가자들이고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 가장 중요한 한국 이미지의 전파자들이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가진, 이들에 의해 전달되는 한국의 이미지는 별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옌볜 조선족 사회에서도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도덕적·윤리적 측면에서는 지탄과 경멸의 분위기가 더 강하다.

둘째, 이제 우리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중남미의 젊은 학자나 청년들이 한국에 와서 연구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여 자유롭게 한국 사회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이들은 한국의 정보통신기술이나 의료기술, 그리고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성취해낸 열정과 운동 경험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선진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것을 경험삼아 장기적 안목으로 이들에게 한국을 배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려면, 미국이나 주변 강대국 일변도로부터 벗어나 이른바 남쪽에 속하는 나라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국가들의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필요한데, 이들의 육성은 시장 여건상 대학 학과체제로는 수행하기 어렵다. 국제지역 연구와 전문가 육성을 위해 문민정부 시절 여러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국제지역학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난립과 편중으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빈곤 소국들을 연구할 수 있는 국가적 전문연구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일부 지역은 이미 전문가들이 있지만, 기존 대학이나 국립 연구기관에서 수용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우리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특히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젊은 학생들의 사회적 상승 이동의 동기에 치우친 선진국 유학 일변도의 경향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선진국 유학 경험 못지않게 후진국 지원이나 자원봉사 경험이 높게 평가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196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단 모델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오늘날 미국내 진보적 친한파들의 상당수가 이 평화봉사단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국제적 안목과 함께 풀뿌리 네트워크를 갖추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국가적 책무이기도 하다.

〈정근식/전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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