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4천억수사 ‘진퇴양난’

2003.02.02 21:47

‘현대상선 4천억원 대출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본격 수사착수 여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대북지원’이란 의혹 자체가 사실로 드러난 데다 대통령마저 우회적으로 대북송금이 ‘통치행위’임을 시인, 수사의 ‘실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대가라는 의혹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을 덮어버릴 경우 검찰의 위상 추락은 불보듯 뻔히 예견되는 것이다.

◇딜레마에 빠진 검찰=설 연휴 기간인 2일에도 유창종 서울지검장과 2차장 및 수사팀 전원이 출근, 수사착수 여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수사불가피론’ ‘수사중단론’ ‘수사유보론’의 장·단점을 정리, 3일 중으로 총장 등 검찰수뇌부에 올린 뒤 결론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유창종 지검장은 “서울지검이 (수사여부를) 결론내리기에는 너무 중요한 사건”이라며 “총장 등 검찰수뇌부와의 논의를 거쳐 조만간 결론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고민은 우선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간접적이지만 대통령이 ‘통치행위’라고 밝힌 마당에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현대와 정부뿐 아니라 북한측까지도 ‘합법적인 경제거래’라고 주장하고 있어 실체규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검찰은 대북송금을 둘러싼 의혹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치행위’를 이유로 수사하지 않을 경우 검찰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적용 법규=검찰은 일단 감사원의 감사결과 자료를 검토한 뒤 수사착수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계속 수사를 하게 될 경우 4천억원 대출과정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해 보인다. 송금과정에 편의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국정원 관계자도 불법행위의 공범으로 처벌되며 산업은행 관련자들은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된다.

또 대출과정에서 청와대 등의 압력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질 경우 관련자들은 직권남용으로 처벌될 수도 있다.

문제는 대북송금이 국익을 고려한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밝혀질 경우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착수를 놓고 고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통치행위에 대해 실정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데다 ‘자금의 통로’로 이용된 ‘깃털’격인 산은·현대상선에만 책임을 묻는 것도 법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게 검찰의 견해인 것이다.

〈이준호기자 jun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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