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AR]명분과 현실 대충돌…국론분열

2003.04.01 18:50

‘전쟁에는 반대하지만 파병은 찬성한다?’ 유례없는 반전평화운동의 물결 속에 파병 찬반 양론이 들끓고 있다.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의 국회 처리가 임박하면서 파병논쟁은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전쟁에는 대다수가 반대한다고 의견이 모아지면서도 파병에 대해서는 논란이 벌어지는 ‘모순의 시대’. 이 파병논쟁의 한가운데에는 국익이 있다. 파병 반대론자도 찬성론자도 모두가 국익을 위해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전과 파병=최근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응답자의 81.4%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응답은 9.7%에 불과해 전쟁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공병·의료 등 한국군의 비전투병 파병에 대해서는 54.2%가 “동의한다”, 3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해 파병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물론 전투병 파병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75.6%)가 “동의한다”(16.1%)보다 압도적이다.

파병문제는 국론분열 양상까지 드러낸다. 국회에서의 잇단 파병동의안 처리 무산이 이를 잘 말해준다. 언론에서는 연일 찬반논쟁이 치열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진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파병 찬성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선언한 데 비해 보수단체들은 파병 반대 의원들을 상대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맞선다. 직장과 가정에서도 세대간 분열양상을 보이는 실정이다. 그러나 김호기 교수(연세대)는 “정부는 정부대로 국익을 추구하고 또 시민사회는 인권제일주의의 원칙을 버려서는 안된다”면서 “최근 논쟁을 국론분열이라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모두가 국익=파병에 대한 논란의 핵심에는 ‘국익론’이 자리한다. 국익론은 결국 북핵문제, 한·미관계와 연계된다. 파병 찬성론자들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파병을 통해 한·미 동맹과 신뢰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는 것. 또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노릴 수 있고, 향후 안정적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한·미관계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 파병론의 줄기. 노무현 대통령도 “파병 결정은 명분이나 논리보다 북핵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감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단히 전략적이고도 현실적인 판단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병 반대론자들은 이런 논리의 허점을 통박한다. 파병은 북핵문제는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의 결의가 없는 명백한 불법전쟁으로 이를 지원할 경우 독재국가이자 핵무기 보유 의혹이 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쟁 도발시 반대할 명분을 잃는다는 것. 실제 한국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때 파병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강경노선을 걸어왔다. 따라서 파병 반대가 한·미 동맹관계를 저해해 결국 국익을 해친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고착된 일방적 미국 추종의 의식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은 우리의 파병과는 상관없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자신의 대외정책을 추진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후 이라크 복구작업에 참여해 얻는 경제적 이익이 거론되지만 13억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익에 대한 인식전환=현재의 국익논쟁은 크게 보아 현실론과 가치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현실론은 가치나 명분보다는 현실적 이익에 따라 움직여온 냉혹한 국제정세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가치론은 ‘언제까지나 국익을 오로지 안보·경제와 동일시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평화와 인권·인류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 긴 안목에서의 국익이 아닌가’라는 물음이다.

강래희 교수(중앙대)는 “명분없는 전쟁, 나쁜 전쟁이라고 하면서 파병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며 “이제는 과거의 경도된 국익 이데올로기를 다시 생각해볼 때”라고 강조한다. 강교수는 “파병은 국가적 윤리 파탄을 의미하며 장기적으로도 실리에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전평화운동, 파병논쟁은 우리에게 ‘진정한 국익’은 무엇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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