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과외 한번 못 시켜준 엄마지만 꿈은 잃고 싶지 않아”

2011.11.01 21:52 입력 2011.11.02 00:26 수정

40대 주부 장동순씨

장동순씨(42)는 2년제 대학 전산학과를 나왔다. 어렸을 적 꿈은 소설가였지만 문예창작과를 지원했다가 낙방한 뒤 진로를 바꿨다.

“집에서도 그랬고 제가 대학에 들어간 1990년에는 전산 일을 안하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어쨌든 직업을 가지려면 컴퓨터를 해야겠구나 생각해서 들어간 거죠.”

장씨는 그곳에서 당시 강사로 일하던 남편을 만났다. 1994년 결혼한 후 대학 때 배운 기술을 살려 편집디자인 일을 했다. 남편은 컴퓨터 학원을 차렸다. 1998년 남편이 학원을 접고 실직자 재교육 사업을 시작한 뒤 장씨의 삶은 팍팍해지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형편이 나쁘지 않았다. IT교육 모범사업체로 선정되고, 주변에서는 ‘국회의원 나가도 되겠다’고 할 정도였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한때 어려움을 겪었다는 장동순씨(42)는 “딸 과외 한번 제대로 못 시켜준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남편의 사업 실패로 한때 어려움을 겪었다는 장동순씨(42)는 “딸 과외 한번 제대로 못 시켜준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남편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돈 들어갈 곳이 많아졌다. 연 매출 규모는 30억~50억원을 오갔지만 순익은 거의 없었다. 장씨는 돈 되는 거라면 다 긁어모아 사업자금을 댔다.

“딸 아이가 명절에 받은 돈이랑 용돈을 아껴 넣은 저축통장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인가 몇 십만원 정도가 쌓였더라고요. 그것까지 깨야 했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등학교 1학년인 딸에게 여태 그 흔한 사교육 한번 시키지 못했다. “영어·수학 실력이 많이 달리나봐요. 그래도 혼자 공부해서 반에서 3~4등 하니까 고마울 따름이죠.”

장씨의 딸은 학교 수업 외에는 인터넷강의를 듣는 게 전부다. 장씨는 “딸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 ‘왜 학원을 보내주지 않았느냐’고 불평을 하더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준도 높아지는데, 따라가기가 벅찼나보다”라고 했다.

남편은 올해 초 사업상 실수로 소송에 휘말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장씨는 “그 일 때문에 딸아이 중학교 졸업식에도 못 갔다”고 했다. 상황이 정리되고나서 남편은 같은 업계에서 일하던 사람 회사에 들어갔다. 수입은 꽤 되지만 월급의 반이 사업하며 쌓인 부채를 갚는 데 들어간다.

장씨는 구청에서 단기계약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프리랜서로 편집디자인 일을 해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면 다 한다”며 웃었다. 지금 가장 큰 소망은 아이의 학업을 위해 전세 5000만원짜리 빌라에서 벗어나 더 조용하고 넓은 집으로 옮기는 일이다.

불혹이 지난 나이지만 장씨는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독서토론 모임에 나가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딸에게 사교육 한번 시켜주지 못한 못난 엄마지만, 끝까지 꿈을 잃지 않고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장씨는 “말이 아닌 행동과 습관으로 보여주는 딸의 멘토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평소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정치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없다고 생각했고, 투표를 한 적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달랐다. 시민운동가 출신 후보의 등장에 시선이 갔다. 그는 “박원순씨가 시장이 됐다고 갑자기 삶이 확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기성 정치인이 하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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