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답답한 속, 그들이 있어 조금은 풀렸다

2016.12.30 21:06 입력 2016.12.30 21:12 수정
홍재원 기자

먹을 것 없던 소문난 잔치 ‘최순실 청문회’

법꾸라지를 괴롭힌 의원들에게 다음의 상을 수여합니다

김경진 의원

김경진 의원

국내 재벌 총수들이 대거 집결한 지난 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62)은 출석하지 않았다. 장 사장은 삼성그룹의 정유라 지원에 핵심역할을 한 인물임에도 여야의 증인채택 과정에서 빠졌다. 의원들은 청문회에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8)을 상대로 “장충기 사장의 정유라 지원 사실을 사전에 알았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으나 이 부회장은 얼버무리며 피해갔다. 장충기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장충기’를 불러대는 이상한 풍경이 연출됐다. 이 부회장과 대질했으면 쉽게 드러났을 의혹들이 묻혔다는 점에서 장충기의 증인채택 불발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한보 청문회 이후 최대 규모라는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청문회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오히려 뚜렷한 한계를 남겼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데다 출석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강제구인도 불가능해 출석 거부 사태도 잇따랐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의혹이 발생하면 검찰에 고발해 수사토록 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이번 청문회는 언론의 의혹 제기와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에 열리는 등 수순이 거꾸로인 것도 한계로 작용했다. 이미 검찰에서 수사를 받은 증인들은 예상대로 답변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과거 청문회는 ‘스타 의원’의 산실이었다. 노무현·김동주·문동환 의원 등이 5공 청문회를 통해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고, “1차(기부)는 날아갈 듯이 냈고 2차는 자발적으로, 그다음에는 내라고 하니까 그저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으로 냈다”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1988년 일해재단 비리 청문회)의 폭탄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한보 청문회 이후 최대 규모라는 ‘큰 잔치’인데도 ‘먹을 것’ 없이 마무리되고 있는 최순실 청문회이지만 그래도 돋보인 의원들은 있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검사 시절의 취조 방식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압박해 국민들의 답답한 속을 그나마 풀어줬다. ‘속사포’ 같은 질문공세로 증인들의 답변을 얻어낸 장제원 개혁보수신당 의원, ‘누리꾼 수사대’와 협업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맹공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눈에 띄었다.

■속풀이상 김경진 의원

국민들의 답답한 속, 그들이 있어 조금은 풀렸다

·우병우에 반말성 말투로 속 긁고 “썩어빠진 검찰” 일갈
·최순실 가계도·인물 관계도 그리며 준비
·“출석 거부 증인 엄벌해야”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50)은 지난 22일 5차 청문회에서 ‘쓰까(‘을까’의 전라도 사투리)요정’이란 별명이 붙었다. 우병우 전 수석의 검찰 두 기수 후배인 김 의원은 “최순실은 검찰 압수수색을 어떻게 알았을까?” “대통령이 알려줬을까?”라는 반말성 힐문으로 우병우의 비위를 긁어댔다. 시종 오만한 표정으로 ‘최순실을 모른다’고 끝까지 잡아떼던 우병우를 향해 “이런 썩어빠진 검찰 때문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와 있다”고 한 마지막 일갈에 우병우의 동공이 흔들리면서 표정이 일순 변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김 의원은 3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부러 모욕을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면서도 “원래 (검찰) 조사 때 부인하는 피의자와 이런 식으로 씨름을 하곤 한다”고 했다. 그는 의원회관에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가계도와 인물 관계도를 그려놓고 청문회 준비를 했다. 검사 시절 수사방식이다.

그는 국정조사 출석을 거부하는 증인들이 벌금형 정도를 받는 현실에 불만을 털어놨다.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민 대의기관인데 검찰이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가 돼 버렸어요. 국회 출석을 거부하는 증인들에게 보다 엄격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속사포상 장제원 의원

장제원 의원

장제원 의원

·김재열 몰아붙여 ‘삼성전자서 결정’ 끌어내
·4년간 종편 출연하며 다진 입담…옛 동료 심문 땐 부담
·“국민이 더 중요…야당에 밀리지 않으려 안면몰수”

국민들의 답답한 속, 그들이 있어 조금은 풀렸다

개혁보수신당 장제원 의원(49)은 지난 7일 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48)을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삼성전자 누구냐” “미래전략실장이냐 이재용 부회장이냐, 누구냐” 등 ‘속사포’로 몰아붙였다. 김 사장은 더듬거리다 결국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팀이 지원을 결정했다고 진술했다.

장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4년간 종편에 출연하다 보니 속사포로 말하는 훈련이 저절로 됐다”고 했다. 언론보도가 쏟아지는 와중에 거물급 증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며 새벽 3~4시까지 자료를 준비하는 강행군의 나날을 보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 앞에서는 ‘여’도 ‘야’도 없었다고 한다. “다른 의원이 좋은 질의를 하면 쉬는 시간에 가서 ‘그거 어떻게 알았어’라며 물어보곤 했어요.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빼고는 모두 한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등 ‘옛 동료’들을 심문하는 처지가 될 땐 심적 부담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솔직히 아찔했어요. 그러나 국민이 더 중요하잖아요. 야당에 밀리지 않으려고 안면몰수했죠.”

■시민공조상 박영선 의원

국민들의 답답한 속, 그들이 있어 조금은 풀렸다

·‘누리꾼 수사대’ 지원으로 김기춘 번복 발언 이끌어
·BBK 검증 참여하며 쌓은 제보 내용 변별력이 도움
·“강적 상대하려 안민석·손혜원 ‘팀플레이’ 주력”

국민들의 답답한 속, 그들이 있어 조금은 풀렸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56)은 ‘누리꾼 수사대’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과를 이끌어냈다. 7일 열린 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을 모른다고 버티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7)은 박 의원이 카톡으로 제보받은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동영상을 들이대자 순간 동공이 흔들리며 표정이 변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이제 와서 최순실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다”며 말을 바꿨다.

“청문회장은 휴대폰의 데이터 송수신이 잘 안돼요. 네티즌이 보내준 카톡 파일이 안 열릴 때도 있었어요. 다시 문자메시지로 받아 보좌관한테 포워딩해서 바로 질의 준비를 시켰어요. 카톡 제보를 질의로 연결하는 데 20분 남짓 걸린 거 같아요.”

박 의원은 2007년 17대 대선 때 BBK 의혹 검증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제보 내용을 변별해내는 순발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박 의원도 이번 청문회는 힘에 부쳤다. “의원들도 준비가 충분치 못했고, 증인들이 대놓고 모른다고 버티니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증인들이 그렇게 막무가내일 줄 예상 못했다.” ‘강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과 공조도 필수였다. “나란히 앉은 안민석·손혜원 의원과 질의 내용을 상의하거나 분담하면서 수위를 높여 나가는 ‘팀플레이’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