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공과 평가 과정도 없이…매번 ‘진영 갈등’에만 머물러

2020.08.28 16:30 입력 2020.11.12 16:34 수정

광복절에 재점화 된 안익태 친일 논란과 ‘애국가 논쟁’

작곡가 안익태가 군중 앞에서 애국가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1955년 4월25일자 경향신문에 실려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작곡가 안익태가 군중 앞에서 애국가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1955년 4월25일자 경향신문에 실려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애국가”
김원웅 광복회장이 불 댕겨
보수 진영 “좌파의 적폐 몰이”
여권 “친일 청산에 반대하나”

‘애국가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의혹이 도마에 오르면서 ‘친일 청산’과 ‘적폐몰이’ 양론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이념 대립 속에 소모적 갈등이 빚어진다는 점에선 예년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 이후 재개됐고, 광복회가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는 측면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애국가 논쟁은 2006년 독일 유학 중이던 송병욱씨가 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국내에 알리면서 시작됐다. 송씨는 안익태가 1942년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논문을 통해 애국가의 원곡인 ‘한국환상곡’이 만주국 축전음악의 일부 선율과 흡사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애국 음악가’ 안익태의 신화가 흔들리면서, 친일 인사가 만든 애국가를 아무런 문제 없이 불러도 되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후 안익태의 친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애국가 여론도 함께 술렁였다.

최근 김원웅 광복회장이 애국가 논쟁에 불을 댕겼다. 김 회장은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 나라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친일·친나치 에키타이 안(안익태)이 작곡한 애국가가 국가 지위를 누리는 일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회견에서 안익태의 친일 영상을 내보냈다. 14년 전 송씨가 공개한 그 영상이다.

보수진영은 김 회장 사퇴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래통합당은 “(김 회장이)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은 “좌파의 친일몰이가 대한민국 정통성까지 부정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공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개별 의원들은 김 회장을 두둔했다. “친일 청산이라는 국민적 과제를 반대하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당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친일 잔재 청산을 충분히 못 한 채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광복회장이 촉발한 친일 논란을 두고 여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친일 청산’을 전면에 내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의 애국가 공격이 유독 커졌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의 공청회를 열었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다. 안 의원은 당시 “한·일 경제전쟁 국면이지만, 이번 기회야말로 친일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이해찬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가 “애국가를 부정하는 인사는 연대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과는 상반된 입장이었다.

통합당 등 보수진영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국가 논란을 국가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며 이념 대립으로 몰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익태기념재단도 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시종일관 부인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이념 대립을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안민석 의원의 공청회 직전 안익태기념재단은 ‘안익태의 음악적, 역사적 공과’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옹호하고, 애국가 교체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여론조사 59% “교체 반대”
소모적 논쟁에 국민 ‘시큰둥’
통합이 아닌 분열 상징으로

애국가 논란의 이면에는 친일 인사의 공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이들이 남긴 유산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진영 갈등만 남아 있다. 애국가로 대표되는 국가 의미에 대한 논쟁도 여전하다. “국가 상징은 사회통합의 매개체”라는 주장이 있지만 “국가 상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반박도 있다.

2007년 출간한 <잃어버린 시간 1938~1944>를 통해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을 알렸던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국가 논쟁은 극단의 논리를 동원한 이념 대립 속에서 2006년 송병욱씨의 고발 이후 지금까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적행위자의 애국가, 역사정의에 안 맞아 청산할 때”

“친일·친나치 행적 사실로 확인
애국가 교체는 국민 여론이 결정”


이해영 한신대 교수(58·사진)는 28일 “이적행위자의 노래인 애국가는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이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은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대부분 확인됐다”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과 알고도 부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지적했다. 안익태의 일제·나치 부역 행보를 추적해 지난해 책으로 펴낸 이 교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람의 작품을 국가(國歌)로 사용하는 건 역사정의 차원에서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30년대까지 애국가를 만들고 독립을 주장하던 안익태가 1940년대 들어 친일로 돌아선 것은 명예욕 때문이라고 봤다. ‘음악가로서의 성공’이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버렸다는 것이다. 애국가가 법적 근거 없는 국가로서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이유는 친미·기독교 세력에 바탕을 둔 이승만 정권과 안익태의 유착에서 찾았다.

애국가 교체 주장도 결국 ‘자유로운 시민’보다 국가 상징을 강조하는 국가주의·민족주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이 교수는 “집단정체성을 확인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매개체로서 국가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애국가를 불러야 할 때마다 대중이 느낄 불편함과 불쾌함을 해소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공식행사용과 국민통합용 등 복수의 국가를 두는 방안 등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애국가 교체는 결국 국민 여론이 결정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안익태의 실체와 해결되지 않은 친일 잔재 청산의 문제를 우리 사회가 더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섣부른 애국가 교체,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 낭비 불러”

“통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
국가적 상징에 과도한 집착 우려”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59·사진)는 28일 “섣부른 애국가 교체에 반대한다”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충분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애국가를 바꾸는 과정에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가 낭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다수가 애국가 교체를 원하는지 불명확한 데다, 누가 어떻게 새로운 국가(國歌)를 만들 것인지 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통일과 같은 확실한 계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알고서도 어떻게 애국가를 계속 부를 수 있겠느냐’는 비판에 독일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독일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는 1922년 국가로 공식 채택되었고, 나치 시절을 거쳐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 불렸다. 종전 이후 잠깐 폐지되었으나, 1952년 1절과 2절을 제외하는 조건으로 부활했다. 1절 가사는 나치 시절 독일의 국가주의와 팽창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됐고, 2절 가사는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금의 애국가 논란에 대해 국가적 상징에 과도하게 얽매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표시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극우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1999년 ‘기미가요’를 법률상 국가로 못 박는 데 이르렀다”면서 “국가적 상징에 집착하는 것은 극우파의 주된 행태인데, 한국에서는 진보라는 분들이 애국가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소모적인 애국가 교체 논쟁보다 애국가와 같은 국가적 상징에 대한 거리 두기를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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