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1년도 안 남았는데’…발등에 떨어진 불도 못 끄는 여야

2023.05.20 09:00

민주당은 ‘돈’, 국민의힘은 ‘종속’ 논란

‘어느 쪽이 더 싫나’ 비호감 투표 될 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안전 헌장 선포식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안전 헌장 선포식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주간경향] 총선이 1년여도 남지 않았지만, 한국 정치권은 선거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양당 모두 ‘집안 단속’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남은 임기 동안 국회 본연의 기능도 제대로 못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이 국가적 담론, 의제 도출 기능을 상실한 상황은 다음 선거도 ‘정권심판’ 대 ‘정권 힘 실어주기’의 뻔한 구도로 진행될 공산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유권자들도 ‘어느 쪽이 더 국가 및 지역 발전에 이로우냐’보다 ‘어느 쪽이 더 싫으냐’는 비호감 선거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마치 역대 최고의 접전 상황을 연출했지만,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였다고 평가받는 제20대 대통령선거의 연장인 모양새다.

국회가 국민을 우습게 아는 듯한 상황은 대통령이 국회를 보는 시각을 통해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여의도 정치 경험 없이 대권으로 직행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당 및 국회에 대한 불신을 행동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중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을 원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며 정당 민주주의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골적인 국회 무시도 이어졌다. 지난 5월 16일 윤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40여일 전의 양곡관리법에 이어 벌써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차 첫 국무회의 의결사항이 거부권 행사였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도 국민이 선출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 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여당 원내 지도부와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 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여당 원내 지도부와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다가오는 총선에서 의제를 발굴할 능력도, 정부의 법안 시행을 견인할 능력도 상실한 양당은 의회정치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던진다. ‘대체 그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의 물음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양당은 주로 30%대의 지지를 각각 받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편차가 존재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41%에 육박하는 조사도 있다(KBS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지난 4월 25~27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신뢰수준 95%·표본오차 ±3.1%포인트). 해당 조사에 대한 해석을 묻자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한국의 정치 지형상 유권자는 선거가 임박하면 양당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선례를 보면, 이 전문가의 평가는 틀리지 않다. 다만 미루고 미루다 어쩔 수 없이 한쪽 정당 선택으로 유권자들이 내몰리는 상황은 의회정치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이를 타개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한국의 유권자들은 각 정당이 총선 전까지 어떤 청사진을 보여줄까 기대하는 게 아니라 어느 당이 더 빨리 자신들이 초래한 위기를 수습할지를 보고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민주당을 둘러싼 ‘돈’

“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쪽이 더 도덕적이라고 보느냐.”

민주당이 소속 의원과 권리당원, 18세 이상 국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물었다는 내용이다. 해당 조사는 결과와 관계없이 민주당 스스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결과 역시 조사에 참여한 일반 국민의 21.3%만이 민주당의 도덕성을 더 높게 평가했다. 이중 ‘국민의힘 도덕성이 낫다’고 답한 비율은 37.6%를 기록하며 민주당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치권에서 도덕성은 ‘수치’보다 ‘가치’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노동, 평등, 복지 등을 지향점으로 내세우며 보수 정당과 차별화했다.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기 어려운 항목들을 추구하는 전략은 개발, 효율성 등을 내세운 국민의힘과 양당체제를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우위’라는 무형의 자산이 함께 따라왔다.

문제는 민주당이 쌓아온 자산과 대조적으로 지금의 민주당을 둘러싼 문제가 온통 ‘돈’과 얽혀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사업 관련 의혹’,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전당대회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관계와 별개로 이들 중 두 명이 이미 민주당을 탈당했다. 해당 사건 모두 법적 처벌 문제와 엮여 있다는 점 역시 부담이다. 적어도 다음 총선까지 해당 문제들이 깨끗하게 매듭지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 5월 14일 거액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14일 거액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김 의원의 코인 관련 문제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의원직과 관련한 문제로 일파만파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투자 관련한 의혹만 살펴봐도 코인 투자 자금의 출처, 막대한 수익을 거둔 코인을 사고판 시점 등이 논란이다. 해당 의혹은 국회의원이라는 김 의원의 직업적 특수성과 연결되며 확장성을 갖는다. 투자 정보에 대한 접근 가능성, 김 의원이 가상자산을 보유한 시점에 가상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점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해 국회의원이 거액의 가상자산을 보유한 경우 주식처럼 ‘백지신탁’해야 하느냐, 의정활동 시간에 코인 거래를 하는 등의 활동을 ‘공직자 윤리 규범’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까지 더해진다.

지난 5월 17일 민주당은 김 의원 문제와 관련한 답을 일부 내놨다. 이날 민주당은 이 대표 지시로 김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본래 민주당 자체 진상조사단이 결과를 내면 이를 토대로 후속 조치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조사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상임위 활동 시간에 코인을 거래한 것 등을 이유로 제소를 결정했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김 의원을 향한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불법성 여부와 관계없는 선에서 최선의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해당 시점에 김 의원이 이미 탈당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민주당이 꾸린 진상조사단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국회는 여전히 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는 선례만 남겼다. 이 대표가 늑장대응했다는 불씨는 남았다. 실제로 김 의원은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분류됐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을 비판하는 진영은 “문제만 생기면 탈당해서 꼬리를 자른다”고 지적하고, 지지자들은 “민주당은 내부총질이 심각하다”며 비판하는 식이다.

코인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주당이 대통령실과 각을 세워온 정책 문제 등은 빠른 속도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당장 정부 정책을 비판할라치면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 한다’는 꼬리표가 달라붙는다. 게다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이 대표 본인이 검찰수사 물망에 올라 있다. 민주당은 총선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당내 정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의힘인가, 대통령실 여의도지부인가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 이후 국민의힘은 ‘정당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묻게 만들고 있다. 출범 초기 김 대표는 “윤석열 정부를 도와, 윤석열 정부 성공”을 외쳤다. 이는 여당 대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설명이었다. 문제는 김 대표가 집권당 대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의정치를 구성하는 정당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민생 현안부터 당 내부 사안까지 ‘대통령실 의중’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빈번하게 언급된다. 당 안팎에서 “대통령실에 종속됐다”는 비판이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에서 발생한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일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원을 따라가면 결국, 대통령실과의 관계가 나온다. 지난 5월 10일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은 태영호 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태 의원 징계의 결정적 사유는 총선 공천 관련 녹취록 파동이었다. 태 의원이 이진복 정무수석과 대화하며 ‘최고위원 회의 때 대통령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공천 문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발언한 것이 핵심이다. 태 의원은 녹취록이 공개된 후 본인의 발언을 부정함과 동시에 당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와도 불편한 기류가 형성됐다. 그러던 태 의원이 돌연 최고위원직에서 자진 사퇴하며 “당과 윤석열 정부에 큰 누를 끼쳤다”고 사죄했다.

잇단 실언으로 논란을 빚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지난 5월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잇단 실언으로 논란을 빚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지난 5월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태 의원의 이런 태도 변화는 같은 시기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은 김재원 최고위원 사례와 비교된다. 사죄하고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한 이면에 대통령실과 총선 공천신청이 가능한 수준의 징계를 받기로 합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태 의원은 이제 갑이 됐다”며 “태 의원이 앞으로 자기한테 공천을 안 주면 ‘이거 사실이었다’고 뒤늦게 이야기를 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고 말했다. 녹취록이 사실이든 아니든 태 의원은 대통령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카드를 쥔 모양새다. 사실상 당내 문제임에도 당대표를 건너뛰고 있는 상황을 두고 “김기현 리더십의 실체는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달하는 것’까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를 확인해볼 수 있는 과정이 남아 있다. 태 의원 자진사퇴로 공석이 된 최고위원 한 석을 채우는 작업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의 경우 사퇴를 하지 않고 당원권 정지 징계만 수용함으로써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 상태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김 최고위원의 빈 자리는 채우지 않는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신속히 총선 대비 체제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거기에 또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쪽으로 당 지도부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빠른 결정을 암시했다. 이 경우 선출형태와 관계없이 사실상 지도부의 지명으로 남은 한 자리가 채워질 수 있다. 다시 대통령실과 밀접한 이른바 ‘친윤’ 최고위원이 등장하면 “대통령실 지시로 움직인다”는 비판에서 지금보다 더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동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부터 이른바 ‘윤심’을 앞세워 당선됐다. 문제는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대통령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당과 대통령을 분리’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관건은 김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 여부다. 김기현 체제에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을 끌어들일 전략이 현재로선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과 대통령 모두 30%대의 지지율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여권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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