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가짜뉴스’ 판단, 적극 행정인가 검열인가

2023.10.15 08:30 입력 2023.10.15 08:31 수정

지난 10월 10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0월 10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가짜뉴스 TF를 만들고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방통위는 명확한 정의도 범주도 없는 가짜뉴스 대신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쓰자던 사회적 합의를 스스로 깼다. 행정용어화된 가짜뉴스에 대한 판단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사실상 검열이 우려된다. 속전속결 가짜뉴스 규제를 부른 건 뉴스타파 보도일까, 가짜뉴스로 위협받을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는 ‘그분’의 의지일까.

[주간경향] “범부처 TF를 신속하게 꾸려 가짜뉴스 방지 의무를 포함한 입법 대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한덕수 국무총리)

“가짜뉴스가 정교하게 조작돼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연내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사회적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정부가 연일 ‘가짜뉴스’를 지목하며 총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짜뉴스 TF’를 만들고, 관련기관에 신고센터를 설치하는 등 정부가 앞장서서 ‘가짜뉴스’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말하는 ‘가짜뉴스’의 실체는 막연하고 광범위하다. 정부의 ‘가짜뉴스’ 때리기가 결국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상 정부 비판 여론을 차단하려는 검열에 가깝다는 지적도 많다.

‘가짜뉴스’ 때리기의 중심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있다. 지난 10월 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회적 재앙”이라면서 방통위와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 부처에 ‘여론 왜곡 조작 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범부처 TF 구성을 지시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으로부터 다음(카카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응원페이지에 중국을 응원하는 댓글이 대량생산됐다는 현안보고를 받고나서였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국무회의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뉴스타파 보도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공론의 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또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민적 충격이 정말 크다”며 “지금 이것은 발전하면 국기문란 사태가 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9월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서도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발언을 두고선 ‘위헌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보의 허위성에 대한 판단이 어렵고 허위정보에 대한 규제도 위헌적 요소가 많은데, 허위보도를 한 번이라도 했다는 이유로 언론사를 폐간한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명백히 위반하는 발상”(오픈넷)이라는 비판이다. 이 같은 비판에도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 TF’ 가동을 알리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인터넷언론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따라 9월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인터넷 언론사의 기사와 동영상도 정보통신 심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심의 대책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9월 26일 방심위 산하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도 출범했다.

실체 모호한 ‘가짜뉴스’

방통위를 중심으로 ‘가짜뉴스’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가 말하는 ‘가짜뉴스’의 실체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학계에서도 ‘가짜뉴스’에 대해 확정된 정의가 없다. 다만 허위성·고의성·목적성을 공통적인 요건으로 꼽고, 통상적인 오보와는 구별한다. 2020년 방통위는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에서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의 구성요건을 고의성, 목적성(정치적·경제적인 이익 등), 조작성, 개인·집단에 미치는 실질적 해악으로 정리하고, “허위사실임을 알면서, 정치적·경제적 이익 등을 얻을 목적으로 정보 이용자들이 사실로 오인하도록 생산·유포된 모든 정보”로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정의했다. 언론중재법이 적용되는 언론사의 기사, 패러디, 풍자, 정치적 견해 등은 제외했다.

또한 ‘가짜뉴스’ 대신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공식용어로 채택했다.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정치적 공격 도구로 사용되면서 뉴스 자체에 불신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및 정치권부터 먼저 ‘가짜뉴스’라는 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방통위는 3년 만에 전문가협의 등의 과정을 통해 6개월에 걸쳐서 만들어 낸 이 같은 사회적 합의를 스스로 폐기했다. 방통위가 앞장서서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명확한 정의 없이 무분별하게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진흥재단에서 ‘가짜뉴스’라는 이름을 달고 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미 ‘가짜뉴스’가 행정용어화된 셈이다. 행정용어가 되려면 해당 용어가 갖고 있는 명확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정의와 범주 규정이 핵심인데, 지금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명확한 범주 없이 다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9월 7일 국민의힘 미디어정책조정특별위원회와 가짜뉴스·괴담방지 특별위원회는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과 관련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등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9월 7일 국민의힘 미디어정책조정특별위원회와 가짜뉴스·괴담방지 특별위원회는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과 관련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등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유럽연합 등에서는 권력이 ‘가짜뉴스’ 프레임을 이용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뉴스’로 낙인찍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짜뉴스’를 ‘허위정보(disinformation)’나 ‘오정보(misinformation)’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짜뉴스’ 프레임을 적극 활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 보도를 ‘가짜뉴스’로 낙인찍었다. CNN이 가짜뉴스를 보도하고 있다며, 기자회견에서 CNN 기자의 질문을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7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최한 ‘가짜뉴스 vs 팩트체크: 끝날 수 없는 전쟁’에 초대된 빌 아데어 미국 듀크대 교수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 가짜뉴스는 많은 혼란을 야기하는 용어이며, 트럼프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사에 대해 이 용어를 사용한다. 미국 언론인이나 팩트체커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가짜뉴스’ 판단은 정부가?

지난 10월 10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방통위와 방심위가 가짜뉴스 전담 TF를 만드는 등 가짜뉴스 규제를 속전속결로 추진하는 것을 두고 야당의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보도를 심의하는 것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터넷 언론은 신문법 등록사업자로 언론중재법에 따라 정정 및 반론보도, 배상금 등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치를 따른다. 방심위 또한 인터넷 언론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면 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넘긴다. 방심위는 이런 기존의 체계를 뒤집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를 근거로 인터넷 언론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방심위 법무팀 보고서의 판단이 며칠 만에 바뀐 것을 두고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9월 13일 방심위 법무팀 검토보고서는 인터넷 언론은 통신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15일 법무팀장이 교체된 후 20일 나온 보고서에서는 인터넷 언론도 통신심의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방심위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10월 6일 방심위 팀장 11명은 “위원회 내·외부의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적 보완과 심의 기준 마련이 선행된 후 시행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성명을 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야당의 지적에 대해 “가짜뉴스에 대한 정치·사회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좀더 적극행정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시민사회에서는 방심위의 규제가 법적 근거가 없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방통위나 방심위가 가짜뉴스 근절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모든 행위에 법적 근거가 없다. 허위사실과 관련해서는 먼저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거나 제재할 수는 없고, 허위사실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 각각의 사안에 따라 적용하는 법률은 이미 다 갖춰져 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방심위원은 정치권 추천으로 이뤄지는데 정부·여당 추천 6인, 야당 추천 3인으로 모두 9명으로 구성된다”라며 “기존 제도하에서는 행정부가 (언론중재위원회 등) 해당 기관을 장악하기 어렵고, 사법적 절차를 따르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통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논스톱으로 심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오픈넷 송지원 변호사는 “사실에서 허위나 진실을 판단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이를 정부가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규제를 하게 되면 결국은 정부의 정보 통제가 돼버린다”라고 말했다.

방통위와 방심위가 속전속결로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만들고 인터넷 언론을 심의하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뉴스타파 보도가 있다. 10월 11일 방심위 통신심의소위는 인터넷 언론에 대한 첫 심의로 뉴스타파의 ‘윤석열 수사 무마 의혹’ 보도를 상정했다. 방심위는 뉴스타파 보도를 유해정보 중 ‘사회 질서 위반’ 정보로 규정하고 안건으로 상정했다. 당장 이 같은 절차가 법적인 근거가 없고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성순 민변 언론미디어위원회 위원장은 “(이동관 위원장 말대로) ‘적극 행정’이라고 포장할 수 없다. 현재 통신심의소위는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 의견진술 결정까지 내렸다. 행정적인 제재로까지 이어진다면 여기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행정소송이 걸리면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라며 “명예훼손이라면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신고를 안 했다. 심의규정으로 ‘사회 질서 위반’을 적용했는데 2010년 헌법재판소가 ‘미네르바 사건’ 판결에서 ‘허위사실 유포죄’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판결에 위배되는 법적으로 무리한 시도다”라고 말했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해 “허위의 통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해악의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하여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일률적이고 후견적인 개입은 그 필요성에 의심이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가짜뉴스 여부를 방통위나 방심위가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 헌재 판결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심영섭 교수는 “심의규정에 따라 유해정보에 대한 심의를 할 수 있고, 유해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있다. 그러나 상위법이 아니라 심의규정이어서 추후 법원에서 과잉규제 여부를 다툴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방심위가 뉴스타파 사안을 다룬다고 한다면 개인의 권리침해 사안을 담당하는 권리보호국에서 다루는 게 맞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대리인이 심의를 요청해야 하고 권리보호국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유해정보 여부를 따진다면 개인적으로 과연 뉴스타파 보도를 유해정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지?

지난 10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창설 제7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향신문 김창길 기자

지난 10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창설 제7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향신문 김창길 기자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권력에 의한 법적 규제가 아닌 다른 방식의 대책을 강구한다. 미국이 2016년 ‘해외 세력의 정치선전과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이는 외국 정부의 선전활동에 대한 국가안보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자국 내 각종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 유럽의 경우 2018년 말 ‘정보조작방지법’을 통과시킨 프랑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국가권력이 가짜뉴스 규제에 직접 나서지는 않고, 포괄적·자율적 규제방식을 시행 중이다. 심영섭 교수는 “해외는 자율심의다. 나아가 권력감시나 정치인에 대한 보도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지금 정부는 심의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검열행위를 하고 있다. 위축효과로 실질적으로 보도를 포기하게 만들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 중인 ‘가짜뉴스’ 때리기의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내외 행사에서 ‘가짜뉴스’가 국가와 사회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에서 “허위 선동, 가짜뉴스가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대에서 열린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도 “가짜뉴스 확산을 방지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10월 4일 재향군인회 창설행사에서는 “가짜뉴스와 허위 조작 선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여당이 말하는 ‘가짜뉴스’의 배경에는 ‘공산전체주의 추종세력’, ‘반국가세력’ 등을 언급한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 단순히 ‘가짜뉴스’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가짜뉴스’를 ‘전체주의 전략 속에서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라며 “정치 전술의 한 방법으로 가짜뉴스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일종의 전체주의적 통치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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