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9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북한과의 대화 노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20분 간 바티칸 교황궁에서 유럽을 순방 중인 문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평화를 위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현지 브리핑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은 면담에서 “교황님께서 기회가 되어 북한을 방문해 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한 것은 2018년 10월에 이어 두번째다.
문 대통령은 “지난 방문 때 교황님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해 주시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 노력을 축복해 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한국 천주교회가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고,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협조했으며, 기후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천주교계가 한국사회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며 “나는 한국인들을 늘 내 마음속에 담고 다닌다.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인사를 전해 달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돼 기쁘다”고 말하자 교황이 “언제든지 다시 오십시오(ritorna)”라고 말하는 등 면담은 내내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교황 면담은 선물 교환 등 모든 일정을 포함해 35분가량 진행됐다. 당초 예정됐던 1시간보다 25분 짧게 끝난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에 이어 이날 교황을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0분 간 독대한 것에 비해 크게 짧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35분이 짧다면 짧지만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전에 만나셔서 래퍼(rapport)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같은 시간에 교황궁에 있었지만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앞선 관계자는 “저희가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과 면담하고 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이 교황청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며 “입구와 출구가 달라서 조우하는 상황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교황이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종전선언이나 북한과의 대화 재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과 논의해 보겠다는 언급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 간 면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교황이 두 분을 연이어 만났기 때문에 의미있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고 했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이날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교황청은 북한 주민의 어려움에 대해 언제든 인도적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면담 후 문 대통령과 교황은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 철거 철조망을 녹여서 만든 십자가를 선물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강렬한 열망의 기도를 담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의 십자가’ 제작 취지와 과정을 담은 USB도 교황에게 전달했다. 교황은 교황청 공방에서 제작한, 수 세기 전 성 베드로 광장의 모습을 담은 기념패와 코로나19로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를 한 사진, 기도문이 담긴 책자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교황 선물을 보고 김정숙 여사가 “텅 빈 광장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고 하자 교황은 “역설적으로 그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광장이 꽉 찬 적이 없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다음달 5일까지의 7박9일 간 순방기간에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할 가능성에 대해 “한·미가 서로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현재 언급할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정상회의에 함께 참석한다. 이 관계자는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지 못한 국가들이 많다”면서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고, 아직도 한참 더 많은 일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들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재 확인해 드릴 수 있는 사항이 없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만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첫 해외 일정으로 COP26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