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기적인 뇌를 지키는 문지기 “혈뇌장벽을 뚫어라” 두뇌싸움

2017.04.05 20:36 입력 2017.04.05 22:57 수정
오원종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혈뇌장벽과 뇌질환 치료

[전문가의 세계-뇌의 비밀] (6) 이기적인 뇌를 지키는 문지기 “혈뇌장벽을 뚫어라” 두뇌싸움

사람의 체지방률은 대개 20~30% 사이다. 그런데 뇌의 체지방률은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뇌는 적어도 60%가 지방인 ‘초고도 비만 장기’다. 우리 몸에서 순수한 지방 조직 외에는 뇌보다 체지방률이 높은 장기가 없다. 뇌에는 왜 이렇게 지방이 많은 걸까. 뇌가 신경세포로 가득한 ‘이기적인’ 장기이기 때문이다. 1000억개나 되는 뇌의 신경세포는 길게 손을 뻗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데 이때 신호를 보호할 ‘지방 절연체’가 필요하다. 즉 전선의 피복으로 지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뇌의 체지방률이 높은 것이다.

■ 뇌는 포도당 욕심꾸러기

전자현미경을 통해 본 인간의 뇌혈관 단면. 동그란 부분이 혈관이다.

전자현미경을 통해 본 인간의 뇌혈관 단면. 동그란 부분이 혈관이다.

뇌는 몸 전체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20%를 혼자서 소모하는 과소비 장기이다. 더구나 가장 맛좋고 영양이 풍부한 포도당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가 음식을 통하여 섭취하는 포도당의 40~50%가 뇌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옌스 브뤼닝 박사팀이 발표한 연구는 포도당에 집착하는 뇌의 이기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구팀이 쥐에게 고지방식을 먹인 지 불과 3일 만에 뇌혈관에서 포도당 수송체가 감소했다. 먹는 건 많아도 뇌는 정작 굶고 있다는 의미이다. 흥미롭게도 이 쥐에게 한 달 정도 고지방식 음식을 계속 먹이자, 뇌혈관에서 포도당 수송체가 다시 증가하면서 다른 곳으로 갈 포도당을 적극적으로 빼앗아왔다. 뇌는 “포도당은 내가 먼저”라고 외치는 욕심꾸러기인 셈이다.

사각형 부분을 확대해 보면 두 개의 혈관내피세포가 둘러싸고 있고 화살표로 표시된 선이 혈뇌장벽이다.

사각형 부분을 확대해 보면 두 개의 혈관내피세포가 둘러싸고 있고 화살표로 표시된 선이 혈뇌장벽이다.

뇌는 거꾸로 불필요한 물질의 입장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물질의 크기는 최대 약 400달톤(아미노산 한 개의 평균이 110달톤 정도)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나마 물에 잘 녹는(친수성) 물질은 통과할 수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치료 약물 후보의 98%는 뇌세포를 만날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이런 이기심을 유지해주는 뇌의 문지기는 과연 무엇일까. 뇌의 선택적 흡수와 방어 기능은 ‘혈뇌장벽’이라고 불리는, 중추신경계를 지나는 작은 모세혈관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혈뇌장벽이 바로 뇌의 골리앗, 뇌의 문지기인 것이다.

■ 수면병 기생충을 통해 밝혀진 혈뇌장벽

혈뇌장벽이 처음 발견된 때는 약 100년 전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로 진출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토속병인 아프리카 수면병을 연구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트리파노소마좀이라는 기생충이 혈액에 감염됐다가 뇌 속까지 들어가면서 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당시 독일의 과학자 파울 에를리히는 감염된 기생충만 염색하여 죽일 수 있는 마법의 치료물질을 찾고 있었다. 이때 사용한 후보 화합물들이 특이하게도 중추신경계, 즉 뇌와 척수는 염색을 시키지 못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때가 1885년이다. 몇 년 후 에드윈 골드만 박사는 새로운 화합물인 트립판 블루를 개와 토끼에 주입하는 실험을 통하여, 약물이 뇌로 침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혈뇌장벽이 존재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확신했지만, 실제로 어떤 구조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마침내 반세기도 훨씬 지난 1967년 미국 하버드대의 모리스 카르노브스키 박사가 혈뇌장벽의 미세구조를 처음 발견하게 된다. 카르노브스키 박사는 추적 단백질을 쥐의 정맥에 삽입한 후 뇌의 구조를 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관찰했다.

이 결과 ⑴뇌혈관의 혈관내피세포는 다른 조직의 혈관과 달리 ‘밀착연접’ 구조를 하고 있고 ⑵개별 세포 내에서 물질 수송을 담당하는 미세소낭이 거의 없다는 두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 혈액과 뇌 조직 사이에 일렬로 놓여있는 혈관내피세포라는 벽돌이 촘촘히 특수 시멘트로 붙어 있고, 심지어 각각의 벽돌에 조그만 구멍조차 거의 없어 뇌를 단단히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 후 흡착력이 강한 단백질이 시멘트 역할을 하고 있고, 특정 단백질이 미세소낭의 형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혈뇌장벽을 통과하는 4가지 방법

그렇다면 뇌는 튼튼한 문지기를 앞에 두고 필요한 물질을 어떻게 흡수하는 걸까.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단순한 ‘확산’이다. 물과 이산화탄소, 산소, 산화질소와 같은 매우 작은 분자들이 해당한다.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도 크기도 작으면서 물과 기름에 동시에 녹아 비교적 쉽게 세포막의 지질을 통과하여 뇌로 전달된다. 술 몇 잔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거나, 졸린 오후 커피 한잔에 정신이 드는 건 이런 물질이 쉽게 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둘째는 맞춤형 택배 서비스, 즉 특별한 수송체를 이용한 방법이다. 뇌세포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당류, 아미노산, 핵산, 지방산 등이 해당하는데 포도당 수용체가 대표적인 예이다. 흥미롭게도 유기양이온 수송체를 통하여 모르핀이나 니코틴 같은 물질도 뇌 속으로 쉽게 전달된다고 하니, 마약이나 담배를 그토록 끊기 어려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셋째는 수용체를 통한 방법이다. 에너지 균형을 조절하는 렙틴, 혈당 조절을 하는 인슐린 등의 호르몬은 물론 철분 이동에 관련된 트랜스페린 등이 해당한다. 이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맞춤형 택배에 포장을 한 번 더 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포횡단투과 경로를 이용한 방법이 있다. 알부민 단백질의 이동에 일부 사용되고 있다.

반대로 뇌에서 생긴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시스템도 존재하는데, 역시 특화된 수송체 혹은 수용체 등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배출 수송체로서 P-글리코단백질이 있는데, 이 단백질은 치료약물도 배출하기 때문에 뇌질환 약물을 전달할 때 꼭 고려해야 한다. 모르핀의 경우 이 단백질에 강하게 결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사히 뇌 속으로 전달될 수 있다.

■ 치매 치료하려면 혈뇌장벽 넘어야

뇌를 보호하는 최전선인 혈뇌장벽에 이상이 생기면 치명적인 뇌질환으로 발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의 뇌에서는 포도당 수송체가 줄어들며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진다. 혈뇌장벽의 배출 시스템 이상으로 치매의 원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가 뇌 안에서 엉겨 붙는 현상도 나타난다. 최근 오스트리아의 가이아 노바리노 박사팀에 의하면 아미노산 수송체 중 하나(SLC7A5)를 제거한 생쥐 모델에서 자폐증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니, 혈뇌장벽 이상은 뇌의 초기 발달 단계부터 퇴행성 질환까지 넓은 범위의 뇌질환에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치매환자의 혈뇌장벽을 측정한 MRI 영상(사진 위). 혈뇌장벽 누출 정도가 정상인(아래)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초기 치매환자의 혈뇌장벽을 측정한 MRI 영상(사진 위). 혈뇌장벽 누출 정도가 정상인(아래)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뇌질환 치료제를 만들 때 문제가 바로 혈뇌장벽을 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뇌종양을 없애고, 치매로 죽어가는 신경세포를 살리고, 뇌졸중으로 손상된 신경을 회복시킬 수 있는 치료물질을 뇌 속으로 보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물리적인 힘으로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혈관내피세포 사이에 충격을 줘서 치료물질을 들여보낼 문을 살짝 여는 방법이다. 문에 붙어 있는 시멘트를 살짝 걷어내는 기술이 최대 난제였으나, 최근 MRI를 이용해 정확한 위치를 잡은 뒤 초음파를 쏴서 뇌혈관을 잠깐 여는 기술이 동물 실험에서 성공하고 있다.

혈뇌장벽을 통과하는 4가지 방법을 묘사한 개념도. 에탄올과 카페인같이 크기가 작고 기름에 잘 녹는 물질이나 포도당 수송체를 통해 뇌 속에 진입할 수 있다. 인슐린 같은 호르몬 수용체를 이용해 진입할 수도 있다. P-글리코단백질은 노폐물을 뇌 밖으로 배출하는 수송체다.

혈뇌장벽을 통과하는 4가지 방법을 묘사한 개념도. 에탄올과 카페인같이 크기가 작고 기름에 잘 녹는 물질이나 포도당 수송체를 통해 뇌 속에 진입할 수 있다. 인슐린 같은 호르몬 수용체를 이용해 진입할 수도 있다. P-글리코단백질은 노폐물을 뇌 밖으로 배출하는 수송체다.

물리적인 기술은 개발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전략은 혈뇌장벽의 문지기를 속이는 방법이다. 파킨슨병의 치료제인 엘-도파의 경우 아미노산(티로신)을 운반하는 수송체에 살짝 올라타서 뇌 속으로 몰래 들어간다. 택배상자의 내용물을 비슷한 걸로 바꾸어 운반하는 셈이다. 좀 더 영리한 방법으로 ‘트로이 목마 전략’이 있다. 거대한 목마 속에 군인들을 숨겨 넣어 트로이를 무너뜨린 그리스군의 전략과 같이, 혈뇌장벽을 통과하는 정상 물질을 치료물질과 결합시켜 상자에 담아 들여보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치매 치료에 유용한 아밀로이드 항체를 혈뇌장벽을 쉽게 통과하는 다른 항체에 붙여 키메라 항체를 제작한다. 키메라 항체를 치매에 걸린 쥐에 주입한 결과 치매의 원인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침착이 60% 감소하였다고 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전략은 문지기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럽게 뇌를 통과하는 방법으로서 미세한 나노입자나 엑소좀 등을 이용한다. 먼저 나노입자의 표면에 세포막과 잘 결합하는 알부민 단백질을 붙인 뒤 다시 치료물질을 결합시킨다. 이렇게 하면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치료용 나노입자가 완성된다. 최근에는 자성나노입자를 이용하는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엑소좀은 세포에서 분비되는 작은 주머니인데 여기에 치료물질을 넣어 뇌 속으로 들여보내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엑소좀은 나노입자와 달리 생체유래물질이기 때문에 세포횡단투과 경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 뇌를 치료하는 초소형 잠수정

혈뇌장벽 발견의 단초가 되었던 기생충 트리파노소마좀은 긴 편모를 빙글빙글 돌려 혈액 안에서 헤엄도 치고 뇌도 뚫고 들어간다. 이 기생충의 이름도 드릴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트리파논(Trypanon)’에서 왔다. 환자의 혈뇌장벽을 뚫고 치료 약물을 전달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혈뇌장벽을 뚫을 수 있는 다양한 드릴을 개발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겐 영화 <이너스페이스>에서 혈관 속을 헤엄치던 초소형 잠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뇌 속의 병든 신경 세포나 악성 종양을 찾아간 뒤 싣고 간 약물로 상처난 곳만 치료할 수 있는 그런 잠수정 말이다. 몇 해 전 혈관 청소로봇 실험이 국내에서도 성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뇌 속으로도 들어가는 나노전달체나 로봇이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 오원종

[전문가의 세계-뇌의 비밀] (6) 이기적인 뇌를 지키는 문지기 “혈뇌장벽을 뚫어라” 두뇌싸움


살아 있는 것들이 신기했고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미국 조지아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 연구원으로 신경과 혈관이 항상 가까이서 친구처럼 돕는 현상을 공부하면서, 뇌혈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 한국뇌연구원에서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관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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