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신호로 변질된 번식 경쟁…화려한 뽐내기만 남았다

2024.01.25 06:00 입력 2024.01.25 06:01 수정
최정균 교수

⑦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

수컷 공작이 꼬리를 펼쳐 화려한 무늬를 과시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 비해 크고 화려한데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번식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진화의 결과이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수컷 공작이 꼬리를 펼쳐 화려한 무늬를 과시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 비해 크고 화려한데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번식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진화의 결과이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수사자 갈기, 공작 꼬리, 남성들 ‘큰 동물 사냥’은 모두 자신이 건강하다는 걸 알리기 위한 과시 행동
암컷이 위장 신호에 속아 짝짓기 하면 자식들 생존율 낮아지고 도태할 수밖에 없어
번식도 않으면서 경쟁심리에 쫓겨 발버둥치는 현대인들, 차라리 진짜 번식을 하는 편이 승리하는 길은 아닐까

본 연재의 세번째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소개한 ‘브루스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강한 수컷이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고 암컷을 차지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랑구르원숭이의 유아 살해 행동이 처음 보고되어 학계에 충격을 준 이후로 다양한 포유류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것이 광범위한 현상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예를 들어 떠돌이 수사자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무리를 지배하고 있는 수컷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면 새끼 사자들을 전부 몰살한 후 빼앗은 암컷들과 하루에 수십회씩 교미를 한다. 유아 살해를 하지는 않지만 코끼리물범의 경우 암컷의 5배가 넘는 체중을 지닌 수컷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한쪽이 피를 흘리거나 쓰러질 때까지 몇 시간씩 격렬하게 싸우며 승자는 50마리 넘는 암컷을 거의 혼자 차지한다.

나폴레옹 샤농 | 아모츠 자하비 | 소스타인 베를런 | 요한 하위징아(왼쪽부터)

나폴레옹 샤농 | 아모츠 자하비 | 소스타인 베를런 | 요한 하위징아(왼쪽부터)

인간 사회에서도 번식 경쟁이 분쟁과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 알려진 데는 저명한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뇽의 영향이 컸다. 그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 사는 야노마모 족과 지내며 기록한 내용에 의하면, 이 부족에게 여성은 하나의 비싼 상품이며 여자를 살 수 있는 자원이 되는 열매 하나를 놓고도 폭력이 동반되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탓에 40세쯤 되면 부족의 3분의 2가 살인으로 가까운 친척을 잃는다. 마을끼리 전쟁이 벌어지면 여자들은 어김없이 강간을 당하거나 결혼을 위해 납치를 당했으며, 마을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분쟁의 원인은 주로 간통이었다.

샤뇽은 진화론적 관점을 인류학 연구에 도입한 최초의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문명과 전쟁>이라는 방대한 저서에서 아자 가트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샤뇽의 관점을 지지한다. 특히 다른 여러 수렵채집 사회의 자료를 제시하며 일부다처와 같은 사회적 제도나 여아 살해로 인한 남녀 성비의 불균형과 같은 상황이 남자들 간의 이러한 번식 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이러한 직접적인 무력 경쟁 말고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동물의 세계에서 거의 예외없이 수컷은 크고 화려하며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새들의 지저귐, 수사자의 갈기, 길고 화려한 수컷 공작의 꼬리, 사슴의 크고 아름다운 뿔, 마치 화장이라도 한 듯 적색·청색·백색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맨드릴의 얼굴 등이 그런 예들이다. 특히 새들의 돋보이는 화려한 색,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공작의 꼬리나 사슴의 뿔, 그리고 포식자를 만나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는 톰슨가젤의 대담한 행동 등은 생존에 불리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과시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의 동물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 교수가 제안한 ‘핸디캡 이론’에 기반해서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라고 불리는데, 이는 진화생물학에서 널리 입증되어 있다. 과도한 과시 경쟁으로 3.5m나 되는 큰 뿔을 가지게 된 아이리시 엘크는 생활환경이 숲으로 덮여가면서 생존에 심각한 문제를 겪다 결국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신호들은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정직한 신호’다. 만약 이 신호가 거짓이며 암컷이 이 위장 신호에 속아 짝짓기를 하게 된다면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의 생존율은 낮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거짓 신호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된다. 수컷 공작의 경우 꼬리에 많은 무늬를 가지고 있고 과시 행위를 많이 하는 수컷들이 혈액 수치로 볼 때 면역학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감염과 비슷한 염증 반응을 유도해보면 전체적으로 과시 행위가 줄어드는데, 이때도 꼬리의 무늬 개수가 많은 수컷들은 이러한 감염 반응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의 과시 행위를 유지한다. 수컷 공작의 꼬리는 그야말로 ‘정직한’ 신호로 작용하는 것이다.

번식 경쟁 속 인간의 과시적 행동의 한 가지 좋은 예가 남자들의 사냥이다.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수렵채집 사회는 인류의 조상들 행동 양식을 알 수 있는 좋은 모델인데, 인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이런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양상 중 하나는 남성들이 큰 짐승을 사냥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큰 사냥감을 얻게 되면 자기 가족들뿐 아니라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통계치를 보면 훌륭한 사냥꾼의 가족들이 다른 가족들보다 고기를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이들 사냥꾼의 죽음이나 이혼이 아이들의 생존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인류학자들은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큰 동물을 사냥하여 나누어 주는 남자들의 행동을 바로 ‘값비싼 신호’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파라과이의 아체 족과 탄자니아의 하드자 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평판이 있을수록 더 인기 많은 여성과 결혼한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생식 성공률도 높게 나타난다. 또한 훌륭한 사냥꾼일수록 여자들이 아기를 임신했던 시점에 남편 외에 관계를 가졌던 상대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나이든 남자들의 경우 젊은 여자와 결혼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두 번째 가정을 꾸렸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남자들 스스로도 사냥 기술이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포식자를 만났을 때 팔짝팔짝 뛰는 톰슨가젤.

포식자를 만났을 때 팔짝팔짝 뛰는 톰슨가젤.

농경사회로 접어든 이후로는 자연적으로 가용한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학적 노동과 생산이 이루어지고 거기서 비롯된 잉여가치의 착취를 통해 본격적인 과시와 신분 향상의 추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누렸던 온갖 장식물과 사치스러운 생활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왕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휘황찬란하고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입고 벗고 세탁하는 데에도 많은 하인이나 신하가 필요했을 터인데 이는 공작의 꼬리나 사슴의 뿔과 같은 ‘값비싼 신호’를 연상케 한다. 권력자들은 실제로 많은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다양한 인구 집단의 유전체에서 X 염색체와 상염색체에서 나타나는 유전 변이의 다양성을 조사해보면 X 염색체에서의 변이가 상대적으로 높게 일어난다는 것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서 일부다처가 지배적인 생식 형태였임을 알 수 있다. 아시아나 유럽 현대인들의 Y 염색체를 조사하여 칭기즈칸, 청나라 태조, 아일랜드 왕조의 혈통 등 권력자들이 남긴 유전학적 발자취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밝힌 연구들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을 수백명 낳았다고 알려진 칭기즈칸의 DNA는 불과 1000여년, 즉 30여세대 만에 무려 1600만명의 남성에게 전해진 것으로 파악된다.

근대사회로 내려와보면 1899년 출간된 고전 <유한계급론>에서 소스타인 베블런이 낱낱이 파헤친 미국 사회에서의 소비 행태가 있다. 유한계급의 원어 표현은 ‘leisure class’로서, 여가 및 유흥을 즐길 수 있는 한가로움이 있다는 의미로 ‘유한(有閑)’이라 번역되었다.

베블런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여가를 즐기는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소비와 유흥의 궁극적인 동기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이를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불렀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모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의 집 근처에 저택을 지어 매일 떠들썩한 파티를 벌이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었다. 개츠비의 부도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바로 이 로맨틱한 사랑인데 그 생물학적 본질은 다름아닌 번식욕이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요즘 사람들이 자동차를 선택할 때 승차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차에서 내릴 때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 즉 하차감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비교의식과 경쟁심리가 따른다. 코넬 대학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 경제행동의 근본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상대성이다. 예를 들어 옆 사람들이 연 5억원을 벌 때 2억원을 버는 곳보다 주변에서 평균 5000만원을 벌 때 1억원을 버는 환경이 더 만족스럽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정서적 반응을 연구해보면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과 비교하여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과 비교하여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프랭크 교수의 비유대로 우리는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일 때보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일 때 더 행복하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올리는 현대인들을 보면, 어느 유명한 맛집이나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느 휴양지에서 어떤 옷을 입고 휴가를 즐기며,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성공한 사람이나 유명인을 만나고, 어떻게 몸매를 과시해야 나의 재력과 성취와 사회적 지위와 훌륭한 유전적 자질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유전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경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행동들을 부추기는 우리 몸 안 유전자들의 번식 욕구를 우리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유전자의 아바타가 되어 그 의도는 모른 채 감정적 만족이라는 당근으로 조종을 받을 뿐이다. 일부 노골적인 젊은 남성들을 제외하면 비싼 차를 몰면서 실제로 짝짓기 기회를 엿보지는 않는다. 다만 값비싼 자동차 자체로 뿌듯한 하차감을 누리며 사회적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놀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수하게 자유로운 행위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의 치열한 번식 경쟁은 놀이조차 ‘값비싼 신호’로 변질시켰다. 잘 놀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부와 능력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심지어 잘 노는 것을 과시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프로스포츠와 연예, 대중예술의 세계다. 이렇게 호모 루덴스는 자신의 번식 경쟁력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유희를 즐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한계급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게다가 많은 호모 루덴스들은 오직 자기 인생을 최대한 즐기는 것만을 지상과제로 삼아 자식도 낳지 않는다.

이들의 과시적 여가와 소비 행위는 실은 번식을 위한 유전자들 욕구의 발현인데, 실제로 번식은 하지도 않으면서 번식을 목표로 발동되는 가열찬 경쟁 심리에 쫓겨 발버둥치는 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유혹에 저항할 수 없어 이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겠다면, 가진 돈을 낭비해가며 변죽만 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진짜 번식을 하는 편이 승리하는 길은 아닐까.

최정균 교수

[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값비싼 신호로 변질된 번식 경쟁…화려한 뽐내기만 남았다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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