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탄’에 그친 이면계약 금지…구단 돈 뽑아먹는 그들의 ‘빨대’

2023.07.24 22:09 입력 2023.07.24 22:10 수정

③ 에이전트 시스템의 허점

[축구판 블랙 커넥션] ‘공포탄’에 그친 이면계약 금지…구단 돈 뽑아먹는 그들의 ‘빨대’

최근 축구판 스카우트 관련 뒷돈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는 최모씨는 대한축구협회 공식 에이전트다. 최씨는 자신을 에이전트로 등록하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를 한 명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최씨가 관리한 선수는 복수 구단에 여러 명 있다. 그리고 최씨는 구단으로부터 수수료도 받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어떻게 생긴 걸까.

축구협회는 1년에 한두 번 에이전트 등록을 받는다. 에이전트가 스스로 하는 절차다. 관리 선수를 명기할 의무도 없다. 에이전트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가 너무 많을 경우, 견제를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 또 이적 후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있다. 관리 선수 수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등록하지 않는 이유다.

계약 관련 상황을 속이는 건 에이전트만이 아니다. 구단들도 그렇다. 선수 등록을 하려면 구단은 프로축구연맹에 표준계약서를 매년 제출해야 한다. 표준계약서에는 선수가 서명할 수도 있고 에이전트가 서명할 수도 있다. 최씨는 몇몇 구단과 선수 간 계약서에 에이전트 자격으로 서명했고 수수료도 받았다.

축구판에는 표준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도 존재한다. 선수(또는 에이전트)와 구단이 실제로 서명한 또 다른 숨은 계약서, 즉 이면 계약서다. 이면 계약서 내용이 표준계약서에 빠지거나 왜곡된 경우도 적잖다.

이면 계약서 작성은 구단, 선수(또는 에이전트) 간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축구협회와 연맹을 속이는 데 구단들이 관례적으로 또는 조직적으로 관여하는 셈이다.

구단은 이면 계약서를 근거로 에이전트 수수료를 지급한다. 표준계약서에는 없지만 이면 계약서에 존재하는 에이전트가 있다면 수수료는 지급된다. 구단 고위층과 에이전트가 서로 짜면 구단 돈은 얼마든지 빼먹을 수 있다.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은 이면 계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면 계약한 게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해당 구단 1년 선수 영입 금지 또는 5000만원 이하 제재금, 해당 선수의 5년간 국내 리그 등록 금지 처분이 내려진다. 그런데 이면 계약을 밝히기도 힘든 데다, 설사 밝혀진다고 해도 중징계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구단에 5000만원 제재금은 큰돈이 아니다. 선수와 구단 간 소송전도 이면 계약서를 근거로 진행된다. 이면 계약서 불허 규정은 실제 축구판에서는 무시당하는 ‘공포탄’인 셈이다.

구단과 에이전트가 담합하는 경우는 또 있다. 대표적으로 악용되는 게 클럽 에이전트다. 클럽 에이전트는 선수가 아니라 구단을 대리하는 에이전트로 구단 편이다. 예를 들어, A구단이 B구단으로 C선수를 보낸다고 하자. C선수 에이전트는 D다. D가 이적 업무를 주관했다면 D에게만 수수료가 지급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A구단은 에이전트 E(클럽 에이전트)를 이적 업무에 관여한 것처럼 계약에 넣는다. 그러고는 B구단으로부터 이적료를 받고 수수료를 D, E에 나눠준 뒤 E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다. 사실상 이적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나중 구단 측 ‘배려’로 일부 업무를 대행한 에이전트를 구단 재정을 뽑아먹는 ‘빨대’로 활용하는 셈이다.

검찰은 최씨를 수사하면서 다량의 이면 계약서를 발견했다. 최씨가 거래한 구단은 알려진 곳만 5곳 안팎이다. 불법인 이면 계약을 일삼은 다른 구단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 대상과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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